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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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17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조선지도』에 수록된 경기도 금천 지역 지도. 1760~1770년대 동일한 기준으로 전국의 군현 지도인 『조선지도』를 제작할 때 만들어진 지도로 경기도 군현 지도 33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조선지도』「금천」은 20리 방안이 가로와 세로에 각각 세 개씩 있으며, 총 아홉 개의 방안에 그려졌다. 지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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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17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인 『조선지도』에 수록된 경기도 부평 지역 지도. 1760~1770년대 동일한 기준으로 전국의 군현 지도인 『조선지도』를 제작할 때 만들어진 지도로 경기도 군현 지도 33장 가운데 하나이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조선지도』 「부평」은 20리 방안이 가로에 네 개, 세로에 세 개이며 총 12개의 방안에 그려졌다. 지도 오른쪽 상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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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1413년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지방 행정 구역. 1018년(현종 9) 12현을 왕도(王都)의 외곽 지역인 ‘경기’로 구획하였다. 12현은 개성현(開城縣)·장단현(長湍縣)·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송림(松林)·임진(臨津)·토산(兎山)·임강(臨江)·적성(積城)·파평(坡平)·마전(麻田) 등지로, 이들은 상서도성(尙書都省) 아래에 두었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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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현조에 “북쪽으로 양천현(陽川縣)까지의 거리가 27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양천현조에는 “금천현(衿川縣)까지 동남쪽으로 20리이다”라고 실려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조와 양천현조의 기록에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 금천의 옛 지명이었던 고구려의 잉벌노현(仍伐奴縣)을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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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통치 조직과 지방 제도에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다져지자, 태종은 1413년에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다분히 고려왕조의 잔재를 불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 태종은 각 도의 부관(府官)은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는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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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1454년(단종 2)년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당시 부평(富平)은 “서쪽으로 대해(大海)까지가 10리, 남쪽으로 인천까지가 10리, 북쪽으로 김포까지가 10리다. (중략) 호수(戶數)가 429호, 인구가 954명,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20명, 선군(船軍)이 128명이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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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있던 온수산의 봉수대 터. 봉수대는 전근대의 대표적인 통신 수단으로, 특히 적군의 침략 등 위급 상황 시 그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되었던 구조물이다. 조선시대 국방상의 통신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봉수 제도는 전근대의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그 기원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으나, 제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려시대이다.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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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명장. 윤관(尹瓘)[1040~1111]은 고려 전기 부평 지역의 지방관인 수주(樹州)의 지주사(知州事)를 지냈다. 이때 관장하던 지역이 현재의 구로구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다. 윤관이 부임하였을 당시는 개경 근교의 큰 고을로 인근의 부평, 인천, 안산, 시흥, 양천, 고양, 교하, 김포 전체가 수주의 속현으로 지주사의 관할에 있었다. 윤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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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양천. 자는 중질(仲質), 호는 척금(滌襟). 증조할아버지는 허비(許扉), 할아버지는 허손(許蓀), 외할아버지는 한서봉(韓瑞鳳)이다. 아버지는 허종(許琮)이며, 장인은 이혜(李譓)이다. 1506년(연산군 12) 병인 별시 정과에 합격하여 1518년(중종 13)에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한 부평부사로 재임하였다. 품계는 통정대부로 부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