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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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속해있던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과천현(果川縣)은 동쪽으로 광주(廣州)와 남쪽으로 수원부(水原府), 서쪽으로 금천(衿川)·안산(安山), 북쪽으로 노량(露梁)과 경계를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기존의 지관(知官)과 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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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4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현조에 “동쪽으로 과천현(果川縣)까지 11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시흥군읍지」에는 “과천과 동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과현(衿果縣)은 조선시대 경기도 금천현(衿川縣)과 과천현이 합하여 이루어진 지명이다. 금천현은 오늘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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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구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를 멸망시키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통치 조직과 지방 제도에서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답습하였으나 조선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다져지자, 태종은 1413년에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는 다분히 고려왕조의 잔재를 불식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도였다. 태종은 각 도의 부관(府官)은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監務)는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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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과 정자. 누정은 전통시대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을 행하던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정(亭)·각(閣)·당(堂)·정사(精舍)·대(臺)·원(院)·헌(軒)·재(齋)·와(窩) 등의 명칭이 붙는데, 누·대·정 등은 유관(遊觀)의 공간에, 객사·각·원 등은 공공건물에, 헌·당·재·와 등은 개인의 거처에, 암(庵)·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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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1946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913년 12월 29일에 발표된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합방 직후의 12부 317군을 12부 220개 군으로 폐합하였는데, 이때 시흥·과천·안산의 3개 군이 통폐합되어 시흥군이 되었고 소재지는 영등포에 두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 밖 지역을 개편하였을 때 이 가운데 경기도 시흥군 북면[도림리·구로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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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조선 시대의 전쟁. 오늘날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금천현(衿川縣)과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에 속하였고 수도인 한양 및 바다와도 가까워 전란의 중심권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은 의병 활동 또한 매우 활발한 지역이었으며 전란의 한 복판에서 피해 또한 막심하였다. 구로 지역은 한양과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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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구로구에 속했던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조선시대 행궁 터. 정조는 즉위 후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이름 지었다. 이는 아버지 장헌세자를 추모하고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신원(伸寃)의 목적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정조는 자주 능행을 다녔는데 능행의 노선도 이러한 정치적 이유에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