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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68
한자 百濟
영어음역 Baekj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오계화

[정의]

삼국시대 구로 지역을 지배했던 고대 국가.

[개설]

백제는 마한(馬韓)의 소국 가운데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에서 태동하였다. 그 중심지는 오늘날 서울의 송파구 일대였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삼한시대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 한전(韓傳)에 따르면 마한은 약 50여 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지역은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역을 포괄하고 있었다. 백제는 이러한 마한의 소국들을 병합해 가며 성장하여 전성기에 강역이 황해도에서 전라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백제가 태동하고 성장의 중심지가 되었던 한강 유역은 전략적 거점으로 삼국 간 치열한 쟁패의 장이 되었다. 5세기경 개로왕 대에 백제는 고구려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고 도읍을 지금의 공주로 옮겼다. 이후 성왕 대에 중흥을 도모하며 오늘의 부여로 도읍을 옮겼지만 나당 연합군에 패하여 660년 멸망하였다.

백제가 처음 도읍하여 한강 유역을 빼앗기고 공주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의 시기를 한성 시대, 공주에 도읍을 둔 시기를 웅진 시대, 부여로 천도하여 멸망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사비 시대라 지칭한다. 지금의 구로 지역은 백제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한성 시대에 백제 영역이었다.

[백제의 형성]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백제는 B.C. 18년 온조가 건국하였다. 온조비류 형제가 졸본부여를 떠나 동생인 온조는 하남 위례성, 즉 오늘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일대에 자리를 잡았고, 비류는 오늘의 인천 지역으로 비정되는 미추홀에 정착했다. 그러나 비류가 곧 세상을 떠나면서 미추홀 집단은 온조에게 귀부하였다.

미추홀 집단의 귀부에 대해서는 온조왕 때보다 다소 늦은 시기로 보는 경우도 있으나 어느 경우로 보더라도 초기 백제가 일찍부터 오늘의 서울과 인천 지역을 아우르고 있었음이 인정된다. 따라서 서울특별시 송파구 일대와 인천 지역 사이에 있는 구로 지역도 건국 초부터 백제의 영향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발전과 멸망]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 관제를 정비하여 고대 국가의 기틀을 갖추었고, 4세기 중반 근초고왕 때는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하였다. 근초고왕은 이를 토대로 활발한 정복 활동을 벌여 강역이 북으로는 황해도, 남으로는 전라도 지역에 이르러 한반도 서부 지역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후 백제는 고구려의 팽창 정책으로 군사적 압박을 받다가 475년 개로왕 때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성을 빼앗겼다. 이로써 당시 구로 지역도 한강 유역의 다른 지역과 함께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 군현을 설치하였는데, 이 가운데 구로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주부토군(主夫吐郡)잉벌노현(仍伐奴縣) 등이다.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피살된 뒤 문주왕이 뒤를 이어 즉위하고 오늘날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러나 한성의 함락과 개로왕 피살, 웅진 천도는 백제 왕실의 권위를 크게 약화시켜 웅진 시대 초기에는 정치적 혼란이 거듭되었다. 동성왕을 거쳐 무령왕 때 이르러서야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이를 토대로 즉위한 성왕은 중흥을 도모하며 지금의 부여 지역인 사비로 도읍을 옮겼다.

성왕은 잃어버린 한강 유역을 수복하고자 551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성을 비롯한 6군을 회복하였다. 이때 회복한 영토 가운데는 구로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2년 뒤 553년 신라의 기습 공격으로 되찾은 땅을 신라에게 빼앗기고, 뒤이은 전투에서도 패배하여 성왕이 사망하였다. 이로써 한강 유역에 포함된 구로 지역은 백제에서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가 다시 백제를 거쳐 최종적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백제는 안으로 왕권 강화를 도모하고 밖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에 맞섰지만, 결국 나당 연합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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