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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71
한자 新州
영어음역 Sin-j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오계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행연도/일시 553년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557년연표보기

[정의]

553년에서 557년까지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신라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백제는 고구려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551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그 결과 백제는 한성과 평양을 비롯하여 6군을 회복하였고, 신라는 죽령에서 고현(高峴)[위치 미상]에 이르는 10군을 차지하였다. 신라는 553년(진흥왕 14)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백제가 회복한 한강 하류인 지금의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기습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한 신라는 ‘새로운 주’라는 의미의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무력(武力)을 담당관인 군주로 임명하였다. 신주의 중심지는 오늘날 경기도 하남시와 광주군 지역으로 추정되며, 구로 지역도 신주 아래 편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정경위 및 목적]

신라는 551년(진흥왕 12) 백제와 공동 작전으로 고구려의 10군을 빼앗고, 그 뒤 553년(진흥왕 14) 연합 작전을 통해 백제가 회복하였던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신라는 이곳에 신주를 설치하고 군주를 파견하였는데, 빼앗은 지역을 일시적으로 점령한 데 그치지 않고 영토를 계속 지배하려는 의도를 확고히 한 것이다.

[관련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진흥왕 14년에 “가을 7월에 백제의 동북쪽 변두리를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고 아찬 무력을 군주로 삼았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내용]

백제 영역이던 구로 지역을 포함한 한강 유역은 475년(장수왕 63) 고구려의 남하정책에 따라 고구려 영역이 되었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유한 이후 설치한 군현 가운데 구로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주부토군(主夫吐郡)잉벌노현(仍伐奴縣) 등이다. 이후 한강 유역은 삼국의 쟁탈전 끝에 신라가 완전히 장악한 뒤 신주를 설치하였는데, 구로 지역이 포함되었을 주부토군잉벌노현신주의 관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변천]

557년(진흥왕 18)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의의와 평가]

신라는 한강 유역 점령 직후 신주를 설치함으로써 점령한 영토를 공고화하고 한반도의 중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로써 처음으로 서해안의 항구를 차지하여 이후 중국과의 외교 및 무역의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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