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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95
한자 衿果縣
영어음역 Geumgwa-hye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대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414년
시행연도/일시 1414년연표보기

[정의]

1414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관련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금천현조에 “동쪽으로 과천현(果川縣)까지 11리(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경기도읍지(京畿道邑誌)』「시흥군읍지」에는 “과천과 동쪽으로 20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금과현(衿果縣)은 조선시대 경기도 금천현(衿川縣)과천현이 합하여 이루어진 지명이다. 금천현은 오늘날 서울특별시 금천구와 구로구, 시흥시, 광명시 일대에 걸쳐 있던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던 현(縣)이었다. 과천현은 조선시대의 지명이 오늘날에도 온전히 남아 있으며, 금천현과 마찬가지로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었다. 이로써 금천현과천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경계의 변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천현과천현은 적어도 그 지명이 시작된 이래로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서로 영현이 되거나 한쪽에 병합되는 등 수차례에 걸쳐 통합과 분리를 반복해 왔다.

[변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757년(경덕왕 16) 금천의 고구려식 지명이었던 잉벌노군(仍伐奴郡)을 한자식 이름인 곡양(穀壤)으로 바꾸고 율진군(栗津郡)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율진군은 과천의 옛 지명이다. 곡양현과 율진군은 고려조에 금주(衿州)와 과주(果州)로 불렸고, 1413년(태종 13) 지명 개혁이 단행되었을 때 금주금천현으로, 과주는 과천현으로 바뀌었다.

1414년(태종 14) 금천현과천현과 합하여 금과현으로 되었다가 불과 2개월 만에 혁파되어 본래대로 복구되었다. 1456년(세조 2)에는 금천현이 이름을 잃고 완전히 과천에 흡수 병합되었으나, 얼마 후에 다시 복구되었다. 과천에 병합되어 있던 기간은 현재의 사료로서는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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