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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북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323
한자 始興郡北面
영어음역 Siheung-gun Bung-my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오계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폐지연도/일시 1936년 4월 1일연표보기

[정의]

1914년부터 1936년까지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제정경위 및 목적]

시흥군 북면은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 방침에 따라 바뀐 행정 구역이다. 일제는 식민 통치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군·면 통폐합을 단행하였는데, 군과 면의 수를 줄여 지방 행정 경비를 절약함과 동시에 개편된 행정 구역에 총독부의 구미에 맞는 새 인물을 취임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토지 조사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도 지방 체제의 개편을 통해 불명확한 동리의 경계와 월경지(越境地) 및 두입지(斗入地)[군현의 경계를 정할 때 자연적인 지세를 따라 결정한 데서 나타난 현상으로, 군현 경계선의 굴곡이 심한 구역] 문제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내용]

1913년 12월 29일 반포되어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위치·관할구역 및 부·군의 명칭·위치 관할구역」에 의해 본격적인 군·면의 폐합이 이루어졌다. 1914년 3월 경계가 획정되어 시흥군시흥군, 과천군 일원과 안산군[월곡면·북방면·성곶면 제외]의 대부분을 흡수 통합하였다.

1916년 4월 24일 경기도령4호에 의해 면 통폐합 재편을 거친 시흥군은 9개 면 83개 행정동과 행정리로 확정되었다. 9개 면은 북면·신동면·동면·서면·과천면·서이면·남면·수암면·군자면이다. 이때 새로 편제된 시흥군 북면시흥군상북면과 하북면, 과천군의 하북면, 상북면 동작리를 통합한 11개 동리로 구성되었다. 시흥군 북면의 11개 동리는 도림리·구로리·당산리·양평리·신길리·번대방리·영등포리·노량진리·본동리·흑석리·동작리이다.

도림리·구로리·당산리·양평리는 종래 시흥군 상북면이 폐합된 것이었고, 신길리·번대방리·영등포리는 종래 시흥군 하북면에서 합쳐졌다. 노량진리·본동리·흑석리는 종래 과천군 하북면에서 통합되었고, 동작리는 과천군 상북면에서 폐합 조치된 것이다.

면소재지는 영등포리였다. 이 가운데 도림리와 구로리가 오늘날 구로구에 해당한다. 구로리는 시흥군 상북면 구로1리와 시흥군 상북면 구로2리가 통합되어 시흥군 북면에 속하게 된 것이다. 도림리는 시흥군 상북면 사돈리와 시흥군 상북면 도야미리, 시흥군 상북면 원지목리를 합하여 시흥군 북면에 이속시킨 것이다.

[변천]

1917년 북면 영등포리가 영등포면으로 승격하면서, 영등포리·당산리·양평리의 3개 동리가 영등포면으로 귀속되었으며, 북면사무소는 노량진리로 이전되었다. 다시 1936년 4월 1일 시행된 총독부령 제8호에 의거하여 북면의 본동리·흑석리·동작리·신길리, 번대방리 일부와 도림리 일부가 경성부로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남은 북면의 동리는 시흥군 동면에 대부분 흡수되었고, 북면은 폐지되어 시흥군은 8개면으로 축소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구로구에 해당하는 시흥군 북면에 속하였던 도림리 일부와 구로리는 시흥군 동면에 속하여 해방 때까지 유지되었다.

1949년 8월 서울특별시 행정 구역이 확장되면서 시흥군 동면도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지금의 구로구에 해당하는 가리봉동, 도림동, 구로동은 모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로 편제되었고, 1980년 구로구가 신설되면서 구로구로 옮겨졌다.

[의의와 평가]

1914년 일제의 지방 행정 체제 개편은 향촌 사회의 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 구획 개편은 단지 공간적 통폐합의 의미만이 아니라, 일제가 우리나라 고유의 자치성과 공동체성을 부정하고 지방 제도를 식민지적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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