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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20
한자 柳泓
영어음역 Yu Hong
이칭/별칭 류홍,자연(子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안홍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구로구지도보기
성별
생년 1483년연표보기
몰년 1551년연표보기
본관 진주(晉州)
대표관직 동지중추부사

[개설]

조선 전기 구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연(子淵).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유순정(柳順汀)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별좌(別坐) 권효충(權孝忠)의 딸이다.

[활동사항]

유홍(柳泓)은 1506년(연산군 12)에 일어난 중종반정 당시 이를 주도한 아버지 유순정을 도와주었다. 이후 사복시주부에 임명되고, 이듬해 형조정랑으로 승진했다가 곧이어 공조정랑으로 전임되었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나 아버지 유순정이 남정도원수(南征都元帥)가 되자 막료로서 도왔고, 난이 평정된 뒤 내자시와 군기시의 첨정을 지냈다.

1511년(중종 6) 무과에 급제하여 사복시부정에 오르고, 이어 훈련원부정을 거쳐 제포첨사로 나아가 역대의 첨사들이 뇌물을 받고 왜인들에게 발급한 도서(圖書)의 검사를 소홀히 함으로써 왜관에 무시로 출입하던 폐습을 단호히 뿌리 뽑는 한편, 왜선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하였다. 이듬해 경상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가 첨지중추부사로 조정에 들어가 오위장을 겸임하였다. 1519년(중종 14) 이후 원주와 정주의 목사를 거쳐 훈련원도정, 충청도병마사와 수군절도사, 경상우도병마사·전라도수군절도사·회령부사·북병사 등의 변경 장수 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44년(인종 즉위년) 진산군(晋山君)에 봉하여지고 부총관을 겸하였으며, 1547년(명종 2) 훈련원도정을 거쳐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무신이면서도 문인·유사(儒士)와 널리 교유하였으며, 청렴하고 검소하여 공조정랑으로 있을 때는 선임자들이 관청의 기명(器皿)을 함부로 사용하던 폐습을 완전히 근절시켰다고 한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 산43-31~32번지에 조성된 진주유씨(晉州柳氏) 묘역에 위치해 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에는 아버지 유순정유순정 신도비, 그 아래 어머니 안동권씨 묘가 있고, 좌측 저편에는 유홍의 묘와 신도비, 그 아래에 후손인 진주유씨 집안의 여러 분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유순정·유홍 부자 묘역은 서울 지역에서 유일한 부자 2대 공신 묘역으로, 조성 시기도 16세기 전반으로 상당히 이른 시기에 속하여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홍 신도비는 옥개형으로, 진주유씨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앙에 유사필(柳師弼)의 묘갈(墓碣)과 함께 세워져 있다. 비좌 윗면에는 복련을 새겼고, 전후 면에는 세 구획의 안상과 그 아래 당초문을, 측면에는 두 구획의 안상과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비문은 좌의정 강령군(江寧君) 홍섬(洪暹)이 찬(撰)하고,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서(書)했다.

[상훈과 추모]

1506년 중종반정 때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에 책록되고, 1545년 을사사화 때는 금직제장(禁直諸將)의 한 사람으로서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에 책록되어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품하였다.

2004년 8월 2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07년 3월 22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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