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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437
한자 金連枝
영어음역 Gim Yeonji
이칭/별칭 간보(幹甫),대경(戴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남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396년연표보기
몰년 1471년연표보기
본관 원주(原州)
대표관직 한성부윤

[정의]

조선 전기 부평현령을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간보(幹甫). 아버지는 중추원부사를 역임한 김을신(金乙辛)이다.

[활동사항]

김연지(金連枝)[1396~1471]는 16세 때인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3년(태종 13) 문과에 급제하였다. 1428년(세종 10) 형조도관정랑(刑曹都官正郞)에 올랐으나, 형옥 관리를 잘못 처리했다고 고신(告身)이 회수되고 귀양을 갔다. 이후 관직에 복귀되어 지평을 지내다가, 1442년(세종 24) 세종이 세자에게 정사를 대리시키고자 둔 첨사원(詹事院)의 동첨사(同詹事)가 되어 출납을 주관하여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이조의 관원과 틈이 생겨 부평현령으로 좌천되었는데, 이때 극심한 흉년을 만난 백성을 잘 진휼한 공으로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에 발탁되고, 이어서 상호군(上護軍)에 올라 지형조사(知刑曹事)를 겸하였다.

이후 호조·예조·형조의 참의를 거쳐 1452년(문종 2)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어서 공조참판·대사헌·한성부윤을 역임하고, 다시 외직으로 나가 경기도관찰사와 경상도관찰사로서 선정을 폈다. 그 뒤 대사헌과 한성부윤을 재차 역임하고, 1467년(세조 13)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품이 단아하고 근실하여 공무에 충실하였으며, 언행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대경(戴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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