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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657
한자 金用山
영어음역 Gim Yongsa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운동가
출신지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대야리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정의]

일제강점기 구로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사항]

김용산(金用山)은 경기도 부천군 소래면 대야리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 동경 공옥사공업학교(空玉社工業學校) 재학 중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 황천구 일모리정(日暮里町) 2-77번지에 주소를 두고, 경상북도 선산 출신 김종권(金鍾權)과 경상남도 거창 출신 하영길(河永吉), 경성 출신 원산영(元山榮) 등 한국인 학생들과 함께 일제의 민족 차별을 극복하고 조국 독립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하였다.

일제 자료에 의하면 이들은 “첫째, 일본인은 입으로는 일시동인(一視同人)을 부르짖으면서, 우리 동포를 경멸하고 차별 대우하고 있다. 그것은 도리어 우리들의 민족의식과 반감을 강화시켜 자연히 조선인 전체 마음을 일치단결시키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미국에서는 이전보다 많은 독립운동 지사가 활동 중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미 조선공사관이 있어서 그 청사 옥상에는 태극기가 펄펄 휘날리고 있다[당시 하와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한인국민회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필자] 또 충칭[重慶]에서도 조국 독립을 위한 선배 지사들의 활동으로 일본이 패전하여 제일 먼저 조선이 독립될 것이고, 이들 선배 독립지사들이 지도할 것이므로, 우리는 이들을 도와서 훌륭한 독립을 창설해야 한다. 셋째 우리들은 조선의 장래에 조선의 중견 인물이 되도록, 현재에 있어서는 사상·철학·문학 등 모든 분야에 있어서 면학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해서 실력 배양에 노력하는 일면, 단결을 강화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김용산 등은 일제강점기 말 국제 정세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토대로 자신들의 항일 진로를 설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의 민족 차별을 철폐하고,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패전을 기회로 미국·영국의 지원 밑에 독립을 성취해야 한다고 믿었다. 나아가 그들 스스로 조선의 중견 인물로서 동지적 단결을 굳게 하고, 조선 독립을 위해 봉기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한인 유학생을 상대로 민족의식 고취와 동지 포섭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동경 시내 품천구(品川區) 동대기(東大崎) 5정목(町目) 331 동장(東莊) 등지에서 수차례 비밀 모임을 갖고 혁명 의식을 드높이는 한편, 단결 강화 및 동지 획득에 노력하였다. 1944년 6월 19일 일제 경시청에 체포되어 8월 21일 치안유지법 5호 위반으로 동경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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