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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909
한자 咸錫憲
영어음역 Ham Seokheon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정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인|사회운동가
출신지 평안북도 용천
성별
생년 1901년 3월 13일연표보기
몰년 1989년 2월 4일연표보기
대표경력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활동한 종교인이자 사회운동가.

[활동사항]

함석헌(咸錫憲)[1901~1989]은 평안북도 용천(龍川)에서 태어났다. 당숙인 함일형(咸一亨)이 세운 삼천재(三遷齋)에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1914년 덕일학교(德一學校), 1923년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4년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26년 우치무라 집회에서 한국인 유학생 유석동, 김교신, 양인성, 정상훈, 송두용과 합의하여 성서 연구를 시작하여 1927년 7월 1일 『성서조선(聖書朝鮮)』을 6인 동인지로 창간하였다.

1928년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1938년 3월까지 모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고, 1940년 평양 근교의 송산농사학원(松山農士學院)을 인수하여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계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2년 『성서조선』 사건에 연루되어 송두용과 함께 1년간 서대문경찰서에서 미결수로 복역하였다.

8·15광복 후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이 되었고, 같은 해 11월 발생한 신의주 학생 의거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였다. 1947년 3월 단신으로 월남하여 서울특별시 구로구 오류동[당시 경기도 부천군 계남면 오류리]에 정착하여 7년 동안 거주하면서 각 학교와 단체에서 『성경』을 강론하였다. 함석헌오류동에 정착한 것은 오류학원 설립자 송두용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안산시에서 주식회사 거양(巨養)의 회장으로 있는 송두용의 장남 송석준(宋錫俊)의 말에 따르면, “당시 송두용의 저택이 오류동역 앞에 있었는데 월남한 함석헌이 함께 7년 동안 종교 활동과 아울러 양계업(養鷄業)을 하면서 생활하였다.”라고 하였다. 이 지역에 살던 70대 후반 주민들은 오류시장에서 개봉동잣절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함석헌의 양계장에 가서 양계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또한 1982년 발간한 함석헌의 수상록 『바보새』 80쪽에 “6월 25일 전쟁이 터지던 날은 일요일이어서 정기적으로 하던 종교 집회를 하려고 아침에 오류동에 들러서 오다가 서울역에서 비로소 그 소식을 들었는데, 물론 듣고 놀랐지만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1956년 『사상계(思想界)』를 통하여 주로 사회 비평적인 글을 쓰기 시작하여, 「한국기독교에 할 말이 있다」라는 글로 신부 윤형중과 신랄한 지상 논쟁을 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58년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투고하여 자유당 독재 정권을 통렬히 비판하여 투옥되었고, 1960년 이후 퀘이커교 한국 대표로서 종교 활동도 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부터 집권 군부 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62~1963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각지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언론수호대책위원회·삼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민주수호국민협의회 등에서 활동하였다. 1970년 『씨의 소리』 창간호를 발간하여 민중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76년 명동 사건, 1979년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1980년 『씨의 소리』가 강제 폐간되어 문필 생활을 중단하였고, 1984년 민주통일국민회의 고문을 지냈다. 평생을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이라는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앞장섰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수평선 너머』,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역사와 민족』,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외 다수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고, 1985년 두 번째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1987년 동아일보사 제정 제1회 인촌상을 받았고, 2002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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