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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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淳昌萬日寺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안정리 337]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건립 시기/일시 | 1658년 - 순창 만일사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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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1월 3일 - 순창 만일사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순창 만일사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순창 만일사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안정리 337] |
성격 | 사적비 |
관련 인물 | 이성계(李成桂)[1335~1408]|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나옹 선사(懶翁禪師)|지홍|원측 |
재질 | 사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71㎝[높이]|71㎝[너비]|13㎝[두께] |
소유자 | 만일사 |
관리자 | 만일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일사의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
[개설]
순창 만일사비(淳昌萬日寺碑)는 순창 회문산 끝자락에 있는 만일사 어귀에 있는데, 음기(陰記)에 사찰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 때 창건되어 조선의 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가 중창한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순창 만일사비는 이 같은 만일사의 유래를 담아 사찰 중건 후인 1658년(효종 9)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옥천지』에 의하면 중건 이후의 만일사는 요사채 2채, 동암(東庵)·칠성각(七聖閣)·선적암(禪寂庵) 등 3채의 암자가 있었다. 한편 만일사는 빼어난 산세와 함께 많은 고승이 배출되었다고 전한다. 내장사 주지(住持) 만암(曼庵)과 야은(野隱) 등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백학명(白鶴鳴) 선사가 만일사의 금화(錦華) 주지(住持)로부터 법통(法統)을 이어받았다. 또 불교 전문학교를 설립하고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스승이며 조선의 천재로 알려진 석전(石顚) 박한영(朴漢永)[1870~1948] 스님도 한때 만일사에서 수도하였다. 그리하여 사찰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으나,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절이 폐허가 되었다. 1954년 다시 법당을 세우기 시작하여 1998년 대웅전, 일주문,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여 도량을 갖추었다.
그동안 무학 대사가 만일사를 중건하였다는 말은 전하여 왔지만, 이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하였는데 순창 만일사비를 통해 비로소 무학 대사의 중창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만일사’란 명칭은 무학 대사가 이성계(李成桂)[1335~1408]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 일(萬日) 동안 기도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무학 대사를 만나기 위해 만일사를 찾은 적이 있으며, 이때 민가에 들러 먹던 고추장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왕이 된 후에도 순창 고추장을 진상하게 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무학 대사 이전에도 여러 차례 중건이 있었겠지만 기록이 없어 내력을 알 수 없다.
[위치]
순창에서 회문산 방향 회문산로를 가다가 회문산 자연 휴양림의 표지판이 나오면 우회전한 후 산 중턱에서 좌회전하여 조금 더 가면 만일사가 나온다. 만일사는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337번지[안심길 103-134]로 회문산 자락 산안 마을에 있으며, 순창 만일사비는 만일사 어귀에 있다.
[형태]
순창 만일사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한옥 기와지붕 비각 안에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 홍살문을 달았다. 좌대(座臺)는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이수(螭首)는 반원 형태이며 갖가지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비석의 크기는 높이 171㎝, 너비 71㎝, 두께 13㎝이다.
[금석문]
순창 만일사비는 재질이 사석(沙石)으로 이루어져 글자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사석은 굵은 모래가 풍우로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비석의 재질로는 좋지 않은 편이다. 탁본한 뒤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조선국 전남도 옥천군 회문 산성 만일진 고금비. 만일사는 백제 때 창건된 사찰로, 우리 조선 태조 강헌 대왕[이성계] 때에 이르러 무학과 나옹 선사(懶翁禪師)가 무너진 사찰을 중창하였다. 이후 정유재란 때 왜구들에게 분탕질을 당한 후 지홍·원측[무심] 스님 등이 오랫동안 중창의 뜻을 가지고 권선하여 시주자들을 모아 건물을 다시 세우고 예전처럼 복원하여 더욱 빛나고 새로워졌다.
그러니 어찌 이런 사실을 비에 새겨 훗날에 전할 마음이 없겠는가마는 슬프도다. 사찰 창건 이후 지금까지의 내력을 모두 서술하고 싶어도 문헌에서 새길 만한 기록을 찾기 어렵고, 또 이와 관련된 것들조차 찾기 힘들다. 따라서 어리석은 내가 감히 비문을 지을 수 없지만, 청신녀(淸信女)들이 돌을 쌓아 기단을 세우고 사찰을 중건한 일이 어디에도 없으니 이처럼 갸륵한 일을 훗날에 전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래서 일의 전말을 이 비에 새겨 훗날 옛일을 징험토록 하고자 한다. 이에 서(序)할 것은 서하고, 명(銘)할 것은 명하여 타일에 박람 군자(博覽君子)를 기다려 본다.”
[의의와 평가]
만일사에는 「고추장과 이성계」 및 「이성계와 만일사」 설화가 담겨 있다고 얘기하는데, 비석이 마모되어 아직까지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2017년 11월 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