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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통산회사 노동쟁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996
한자 -會社勞動爭議
영어음역 Donggwangtongsanhoesa Nodongjaengui
영어의미역 Donggwangtongsanhoesa Labor Difficulti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70년 9월 9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72년 2월 21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관련인물/단체 동광통산 노동조합

[정의]

1970년대 서울특별시 구로구에 있던 동광통산회사에서 일어난 노동 쟁의.

[역사적 배경]

1970~1972년 동광통산회사 노조에 영향을 미친 유사한 노동 쟁의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1970년 2월 한국화이자에서 임금 인상 및 노동 조건 개선 요구 투쟁이 일어났으며, 1970년 7월에는 대한조선공사에서 임금 인상 요구 투쟁이 일어났다. 1970년 11월 전태일 분신 이후 14일 만에 청계피복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1971년 2월에 아이맥전자에서 임금 인상 및 노동 조건 개선 요구 투쟁을 펼쳤다.

1971년 4월에 주한 미국 대사관 경비들이 임금 인상 및 노동 조건 개선 요구 투쟁을 벌였으며 1971년 9월 15일에는 한진파월 노동자들이 KAL 빌딩을 방화하며 격렬히 투쟁하였다. 1972년 7월에는 한국모방[원풍노방]에서 노조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였다.

1970년 부당 해고된 김진원 등 4명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해고 수당과 퇴직금을 받지 못해 영등포도시산업선교연합회에 호소해옴으로써 1970년 9월 9일 동 선교연합회 주관으로 구로동 중앙감리교회당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섬유노조 서울 지부 소속이 되었다. 동광통산회사 노동 쟁의는 「근로기준법」에 의한 보장을 보상받기 위한 노동 쟁의이며, 이 당시 회사 측의 노조 파괴 공작 행위는 동광통산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회람에 잘 나타나 있다.

[발단]

동광통산분회를 서울지부가 관리한 지 2년이 되도록 조합원들로부터 조합비를 거두지 않고, 노동조합 간판도 걸지 않았다. 또한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고 도급제 임금이 2년 동안 20% 인하되었음에도 방치하였다. 또한 열성적인 조합 간부를 부당 해고하고 휴업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데도 묵인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었다.

[경과]

조합원들은 섬유 노조 서울 지부를 불신하여 1972년 1월 15일 모여 상급 노조인 지부를 같은 편직 계통인 서울 의류 지부로 바꾸겠다고 결의한 후 이를 섬유 노조 본조에 보고하였다. 1972년 1월 30일 분회장 황선재와 분회 총무부장이 사퇴한 후 1972년 2월 1일 구로동 중앙감리교회에서 총회를 열어[조합원 275명 중 184명 참석] 서울 의류 지부 동광통산 분회를 결성하고 분회장에 김달환을 선출하였다.

한편 섬유노조는 1972년 1월 20일 개최된 제18차 집행위원회에서 서울 지부와 서울 의류 지부 간의 조직 관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스웨터 분야는 서울 의류 지부 관할로 하고, 이미 노조가 결성되어 서울 지부 산하에 들어가 있는 스웨터 업종의 노조 분회는 당해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서울 지부나 서울 의류 지부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으며, 서울 의류 지부는 스웨터 업종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지부는 동광통산 분회를 서울 의류 지부에 넘겨주지 않고 오히려 회사 및 영등포구청과 함께 분회 조직을 파괴하고 나섰다.

이에 고무된 회사 측은 1972년 2월 21일 천병두 등 18명을 부당 해고시켰다. 조합원들이 이에 항의하자 노량진경찰서 정보과 형사 2명이 이들 전원을 경찰서로 연행했다가 훈계 방면하였으며, 2월 25일에는 천병두 등 5명이 퇴근시간에 분회장 김달환을 만나러 갔으나 생산 과장 및 직원 수명이 이들을 가로막고 “남의 회사 앞에 와서 왜 떠드느냐?”고 공장장 실로 끌고 간 후 경찰서에 신고하자 형사가 나타나 이들을 업무방해죄로 입건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노조 활동을 방해하였다.

[결과]

서울 의류 지부는 섬유 노조 본조에 지원 요청을 하여, 18명의 부당 해고 문제를 회사 측에 시정 요청하였지만, 해고자 18명 중 2명만 복직되고, 나머지 16명은 퇴직금 등을 받는 선에서 끝나 결국 동광통산 노조 분회는 와해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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