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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현덕수의 금무 설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587
한자 -玄德秀-禁巫說話
영어음역 Satto Hyeondeoksuui Geummu Seolhwa
영어의미역 Tale of a District Magistrate, Hyeon Deoksu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인천광역시 계양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김미경B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금기설화|교훈설화
주요 등장인물 현덕수|여장 무당|마을 백성들
관련지명 구로구|계양구
모티프 유형 여장 남자의 음란 행위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현덕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사또 현덕수의 금무 설화」현덕수(玄德秀)[?~1215]가 안남[구로구 일부 지역] 고을의 사또로서 활동할 때,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무당 행색을 하며 살풀이를 한답시고 여염집 아녀자들을 성적으로 농락해서 그 여장 무당과 그 남편을 심문했다는 이야기이다.

금무(禁巫)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무격신앙(巫覡信仰)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무격신앙은 신라 헌강왕 때 「처용랑 전설」로부터 비롯된 개인의 재액을 없애고 복을 비는 것이다. 『고려사』 권12에 무당들이 떼를 지어 하는 국가행사굿[別祈恩]으로 인해 많은 비용을 쓰니 이를 금하라는 상소문이 있을 정도로 그 폐해도 많았으나 고려 말까지 성행하였다고 한다.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현덕수의 본관은 연주(延州)[평안북도 영변]이다. 그는 총명하고 매우 민첩하여 어려서 연주분도장군(延州分道將軍) 김치규에게 발탁되어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하였으나 번번이 과거에 떨어져 결국 고향으로 돌아온다. 1174년(명종 4) 서경에서 조위총이 무인정권에 항변하는 난을 일으켜 철령 이북에 있는 40여 개의 성이 모두 조위총의 편이 되었다.

현덕수조위총의 회유를 굳건하게 물리치며 아버지 현담윤과 용감히 싸워 연주성을 지켜낸다. 그 후에도 연주성이 반란군 1만 명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적을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현덕수의 아버지는 장군이 되고, 그는 안남도호부부사(安南都護府副使)가 되었다. 현덕수는 특히 천지산천·일월성신에 대한 자연숭배, 정령에 대한 신앙과 음사(淫祠)를 싫어하여 이를 엄히 금하니 무당이 그의 경계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현재 현덕수의 묘가 구로구 천왕동에 있다.

[내용]

고려 제19대 명종 때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안남도호 부사 현덕수가 고을의 사또로서 어느 날 여자 무당과 그 남편을 동헌 뜰에 잡아 놓고는 무섭게 심문하였다. 현 사또가 여자 무당을 남자 다루듯이 너무 호되게 추궁하자 그 자리에서 구경하던 많은 백성들이 사또의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정도였다. 여자 무당이 계속해서 여자의 몸짓으로 흐느끼며 자신을 옹호하자 현 사또가 위풍당당한 기세와 호령으로 포졸들로 하여금 반항하던 여자 무당의 옷을 벗기게 하였다.

그러자 옷을 벗은 여자 무당에게서 드러난 것은 거대한 양물(陽物)이었다. 곱상하게 생긴 이 무당은 자신이 남자임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박수무당과 공모하여 부부로 위장하고는 시름시름 앓거나 곤경에 처한 여염집 부녀자들에게 접근해서는 살풀이를 한다는 명목으로 여염집 부녀자들과 통간하여 왔던 것이다. 결국 이 여장 남자는 밝은 안목과 통찰력을 가진 현 사또에 의해 엄한 처벌을 받았다. 그 후로 현 사또는 이 마을에서 민속신앙을 매개로 공공연하게 진행되던 매음을 금지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사또 현덕수의 금무 설화」의 주요 모티프는 ‘여장 남자의 음란 행위’이다. 이 이야기에서 민속신앙의 성행과 더불어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매음에 관한 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에 남무(男巫)가 여장을 할 정도로 여무(女巫)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것은 여장한 무당이 여염집 부녀자들과 통간한 사례 중의 하나이다.

무당이 시름시름 앓거나 불행을 당한 사람에게 좋지 않은 기운을 가졌으니 이를 풀어 없애 주는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당장에 죽을 수 있는 무서운 살이 끼었다고 위협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살을 빼야 살아날 수 있다고 하면서 육체적인 접근을 한다. 여기서 살[急煞]을 뺀다는 말은 노골적인 성행위를 상징하는 말인데, 지방에 따라서는 성행위를 살빼기 또는 살풀이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또 현덕수의 금무 설화」는 금기(禁忌) 유형의 설화로 볼 수도 있다. 또한 무속인들의 세력이 권력화 되어 그들의 무속행위가 사회를 문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사또 현덕수의 금무 설화」는 사회를 풍자하며 비판하는 교훈적인 이야기일 뿐더러, 또한 고려시대에 이미 다양한 형태의 매음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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