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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 조성시 북잡이 지관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1590
한자 章陵造成時-地官-
영어음역 Jangneung Joseongsi Bukjabi Jigwan Iyagi
영어의미역 Tale of Feng Shui Expert to Find an Auspicious Grave Site for Injo's father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인천광역시 계양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경B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풍수담
주요 등장인물 북재비 박씨|인조
관련지명 김포
모티프 유형 명당 찾기

[정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인조 부왕의 장릉 이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장릉 조성시 북잡이 지관 이야기」인조대왕의 부왕 장릉을 국장으로 치를 때에 북재비면서 지관인 박씨를 몰라 본 국장도감 때문에 명당을 얻지 못하고, 박씨를 인지한 사령 김씨와 이씨는 명당자리를 얻게 되었다는 풍수지리담이다.

[내용]

이 설화는 옛날 구로가 속해 있던 부평부의 계양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선조 인조왕은 왕위에 오른 후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종으로 추존하고, 장지로 김포 장릉(章陵)을 정해 국장을 치르게 되었다. 이 장사 때 산역 북잡이[북재비]로 부평 사람 박씨가 명창(名唱)으로 뽑혀 현지에 나아가 상두꾼들과 북을 치며 소리를 선창하였다. 그가 선창을 하면 상두꾼은 소리를 합창하면서 연주 막대로 흙을 다졌다.

이때 북재비 박씨는 명지관이라 그 묘역의 위치가 못마땅해 북을 둥둥 치며 말하기를, 세 발만 더 위에 모셨으면 진짜 명당인 것을 하며 안타까워했다. 이 말을 어느 누군가가 듣고는 바로 국장도감(國葬都監)에게 고했다. 국장도감은 격분하여 “북잡이 상두꾼 놈이 무얼 안다고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며, 존엄한 국장에 불경대죄를 저질렀다고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를 영창에 가두었다가 부평부사에게로 압송케 하였다.

이때 사령이었던 김씨와 이씨는 북재비 박씨가 원래부터 유명한 지관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자기네 부모를 모실 산소자리를 잡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에 박씨는 계양산 기슭을 여기저기 답사하여 명당자리를 지목해 주었다. 그렇게 두 사령은 각각 부모의 묘를 쓰고는 그들 자손들이 대대로 번영하였다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장릉 조성시 북잡이 지관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 찾기’이다. 장릉 북재비 지관은 묏자리를 잘못 선택하였음을 안타까워하고, 지인지감의 능력이 있는 사령들은 명당을 얻는 횡재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인조와 조선왕조의 쇠퇴가 이어진 것은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예로부터 조상신을 경외시하여 섬겨온 우리 전통적 민간신앙이 반영된 설화라고 볼 수 있다. 「인조 부왕의 산역과 나무서리」장릉에 관련된 이야기이므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 인천서구문화원(http://www.seoguc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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