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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에서 얻은 것, 사랑으로 되갚겠습니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A030202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정

2010년 2월 12일, 필자는 대한노인복지회 구로구지회 임원단을 만났다.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는 구로구 산하 162곳 경로당 회원 7000여 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노인회’라지만 혜택을 받으려 하기보다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어느 주민 단체보다 강하다.

[공순이, 공돌이는 근대화 시대 산업 역군의 다른 이름]

“공순이, 공돌이 하면 안 되죠. 1970~1980년대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 산업 역군이에요.” 하고 대뜸 대한노인회 구로지회장 김용덕[1928년생] 씨가 입을 연다. 1995년 강북에서 구로동으로 이사 온 김용덕 씨는 “예전엔 구로가 강북만큼 발전한 곳이 아니었는데 구로디지털단지가 들어서면서부터 크게 발전했죠.”라며, “그래도 구로공단이 있던 시절을 무시하면 안 돼요. 누가 뭐래도 공단의 일꾼들이 우리 사회 경제 발전을 이끌었잖아요.”라고 말한다.

1970년대 초반 마포구에서 구로구 구로동으로 이사 온 홍순춘[1926년생] 씨는 “그때만 해도 구로가 전부 논밭인데다 장마가 오면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허술했어요. 지금은 넥타이 맨 샐러리맨이 출퇴근하는 걸 많이 볼 수 있죠.”라고 말한다.

또 “세상이 이렇게 변했듯이 노인들도 많이 변했어요. 나약해서 누군가에 의지해야 될 존재가 아니라 그 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회에 봉헌할 수 있는 존재인 거죠. 우리 세대가 산업화 1세대 아닙니까. 일제 강점기, 6·25전쟁을 겪고 또 산업 전선에서 목숨 바쳐 일해 온…….”이라며 말을 이어 간다.

[산업 전선의 땀을 잊지 않는 구로구 노인회]

구로구 노인회는 실제로 지역 사회를 돕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에는 경로당 동전 모으기를 통해 모금한 400만 원을 중국 쓰촨성[사천성(四川省)]과 미얀마 등에 성금으로 보냈다.

2009년에는 일일 찻집을 운영해 700만 원의 실수익을 얻은 후 구로구청에서 불우 이웃 명단을 받아 현금으로 10만 원씩 각 가정에 건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평생 모은 전 재산을 구로구 노인회에 기증한 회원도 있다. 구로구에서 30여년 목사를 하다 은퇴한 노광준[1926년생] 씨는 구로5동에 소재한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빌딩을 기부했다. 시가로는 10억 원에 달한다. 김용덕 씨는 “노광준 씨가 빌딩을 팔아 서천에 요양 센터를 짓자고 했어요. 그런데 멀리 가는 것보다 지금 빌딩을 리모델링해서 센터를 지으면 인근 오갈 곳 없는 노인을 비롯해 힘없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죠. 그래서 지금 재단 법인을 등록하고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구로구에서 미담 사례가 이어지는 것은 왜일까. 홍춘순 씨는 “여기는 산업 전선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던 곳이에요. 지금은 공장이 없어지고 디지털 단지가 들어와서 세상이 바뀌었지만요. 우리처럼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받았던 것들은 그대로 다시 베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정보제공]

  • •  노광준(남, 1926년생, 구로구 구로5동 주민)
  • •  홍순춘(남, 1926년생, 구로구 구로동 주민, 금강아파트 경로당 회장)
  • •  김용덕(남, 1928년생, 구로구 구로동 주민, 대한노인회 구로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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