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C01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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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정 |
와룡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궁동은 그 중심부에 물을 품고 있다. 궁골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궁동생태공원에서 만나게 되는 궁동저수지가 바로 그것이다.
예부터 이곳에서 샘솟는 물은 마을의 생계를 책임지는 주요 수단이자 풍수지리적으로 배산임수의 조건을 완성하는 요소였다. 그리고 2008년 4월 궁동저수지가 포함된 궁동 45번지 일대 1만 205㎡에 조성된 궁동생태공원은 현재 주민들이 애용하는 쉼터로 자리 잡았다.
[벼락구덩이 우물이 농수용 저수지로]
궁동저수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43년 농업용수를 가둬 놓기 위해 주민들의 부역으로 만들어진 게 궁동저수지다.
마을 토박이 권이홍[1931년생] 씨는 “예전에는 농사지을 물이 항상 부족했죠. 그래서 해방되기 전에 일제가 지금의 자리에 저수지를 만든 거예요. 궁동저수지 용수를 오류2동 농사에도 갖다 쓸 정도였어요.”라고 말했다.
궁동저수지 자리에는 원래 ‘벼락구덩이 우물’이라고 불리는 게 있었다. 마치 ‘벼락을 맞아 생긴 것 같은 구덩이에서 샘이 솟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벼락구덩이 우물을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러다 일제가 벼락구덩이 우물 자리에 저수지를 팠고, 우물에서 샘솟던 물이 저수지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고 한다. 저수지가 생기자 마을은 벼농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풍수지리적으로는 산을 뒤에 업고 물을 품은 명당자리가 완성됐다.
[수궁동 산신제가 열리는 궁동생태공원]
농업용수로서의 궁동저수지 역할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현대화가 진행되고 마을에 연립 주택이 들어서면서 수궁동의 농업 인구는 점차 줄어들었다. 해방되기 전 일본 사람이 소유했던 궁동저수지 땅은 해방 이후 국유지로 바뀌었다. 마을 사람들은 궁동저수지를 낚시터로 임대하고 수익금은 마을 기금으로 사용했다.
10여 년 동안 궁동낚시터를 관리한 강도필 씨는 “2000년대 들어서 지금의 큰길[궁골길]이 나면서 저수지가 반 토막이 났죠. 그 전에는 훨씬 넓었어요. 배 타고 다니면서 저수지를 관리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토박이 주민들은 “우리가 어렸을 적, 1950년대에는 궁동저수지에서 수영도 하고요. 연꽃이 그득하게 피면 연밭으로 변하곤 했죠.”라고 회상한다.
2000년대에 들어 궁동저수지는 마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1년 작동터널과 궁동터널이 뚫리고 오류고가차도에서 궁동삼거리까지 큰길이 나면서 반으로 나뉜 저수지의 물은 점차 말라 갔다. 낚시터로도 활용할 수 없게 된 궁동저수지는 오히려 마을의 경관을 해치며 주민들의 걱정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구로구에서는 2003년 9월 궁동저수지 일대 1만 205㎡에 수변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궁동생태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당초 39억 원을 들여 2005년 10월 완공하기로 한 공사는 공사비 지연 문제로 미뤄지다가 4년 6개월 만인 2008년 4월 완공됐다. 총 11억 원의 예산을 들인 궁동생태공원은 현재 산책로와 체육 시설, 동식물 관찰 데크 및 정자가 들어선 상태다.
구로구는 인근 토지를 추가 편입해 궁동저수지를 종합 생태 공원으로 조성하는 2차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공원 서쪽에 자리한 안동권씨 묘역까지의 산책로를 역사 탐방로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제 주민들은 궁동생태공원에서 수궁동 산신제를 비롯한 마을의 굵직굵직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와룡산 등산로로 바로 이어지는 궁동생태공원은 수궁동 주민은 물론 인근 부천시 작동, 서울 양천구 신천동 주민들이 오가는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농업용수지에서 주민들의 쉼터로, 궁동저수지는 그 역할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