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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터에 자리 잡은 홍씨네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1326
한자 倉庫-洪氏-墓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기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90년 01월 15일 - 박학래[남, 59세] 구연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7년 06월 20일 - 『금남면향토지』 992~993면 수록
성격 명당설화
주요 등장 인물 남양홍씨|판서를 지낸 남양홍씨 인물
모티프 유형 이미 창고가 있던 장소지만 명당 자리임을 알고는 묘를 쓰기 위하여 원래 있던 건물을 훼손하였다는 전설.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에 있는 창고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창고 터에 자리 잡은 홍씨네 묘」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에 살고 있던 남양 홍씨들이 창고가 있는 자리가 명당임을 알고 건물을 뜯어낸 뒤 묏자리로 사용하였다는 명당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금남향토지발간위원회에서 발간한 『금남면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1990년 1월 15일 박학래[남, 59세]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장재리에는 오래된 건물이 있던 흔적이 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곳으로, 남양 홍씨 집안에서 마루를 깔고 곡식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어느날 판서를 지냈다는 홍씨 집안 사람이 창고 마루가 썩는 것을 보고는 이 장소가 명당이라고 하여 창고를 모두 허문 뒤 묏자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묘지가 남아 있으며, 창고는 금남면 호탄리로 옮겼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창고 터에 자리 잡은 홍씨네 묘」의 주요 모티프는 기존의 건물을 훼손시켜가면서 만든 ‘명당 묏자리’이다. 전통적으로 민간신앙이 뿌리 깊었던 당대에는 풍수지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풍수신앙을 따라 창고를 부수면서까지 만든 것은 조상의 묏자리이다. 보다 좋은 곳에 조상을 모시고, 조상 영혼의 보살핌 아래 대대손손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가장 큰 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양 홍씨 가문 중 판서를 지낸 이가 명당자리를 알아보았으며, 남양 홍씨 가문은 기꺼이 창고를 부수고 명당자리에 조상을 모셨다. 지금도 남아있는 묘지와 설화를 통해 조상을 모시는 것의 중요성과 명당, 즉 풍수신앙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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