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 > 세종시향토문화백과 > 삶의 자취(문화유산) > 유형유산 > 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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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장군 김종서의 묘소. 김종서는 조선 단종 대의 충신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서 출생하였다. 그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지만 계유정란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후에 김종서의 충절이 알려져 1734년(영조 22) 관직이 원래대로 회복되고 명정을 받았다. 묘소 전면에는 비석 2기와 상석, 석주가 있다.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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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류충걸의 묘소와 신도비. 류충걸(柳忠傑)[1588~1665]은 류형(柳珩)의 장남이다. 자는 신백(藎伯), 호는 금사(錦沙)이다. 1618년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강등시켜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대과를 단념하고 공주 지역[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에 은거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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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양홍씨 5대 9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 연서 효교비는 조선시대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나온 남양홍씨 집안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들 9명의 효자들은 홍연경(洪延慶)[1579~1647]과 아들 홍정설(洪廷卨)[1615~1671], 손자 홍우적(洪禹績)[1634~1701]·홍우평(洪禹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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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연기리에 있는 개항기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 척화비는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하여 1866년 비문을 짓고 1871년 4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각처에 세운 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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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도담동에 있는 조선 후기 윤각의 묘소. 충민공 윤각(尹慤)[1665~1724]은 자가 여성(汝誠) 호는 창동(蒼東)이다. 진사 익상(翊商)의 아들이다 1697년에 형 윤원과 함께 공주 요당으로 이거한 후 2년 뒤인 1699년(숙종 25) 33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고, 수군절도사·함경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를 거쳐 총융사가 되는 등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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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 부자의 묘비. 이덕사(李德泗)[1582~1636]와 이태연(李泰淵)[1615~1669]은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응로(應魯)이다.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장인이다. 이덕사는 1616년(광해 8)에 실시된 증광시에 생원으로 합격한 후 의금부도사를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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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박안생의 묘소. 박안생은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할아버지이자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순천박씨 입향조이다. 박안생은 전의의 명족인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 한성좌윤 학당(學堂) 김휴(金休)의 둘째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처가 근처로 이사하면서 전의 지역 순천박씨 입향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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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하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류형의 신도비. 류형(柳珩)[1566~1615]은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신도비는 본래 류형의 묘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 능곡 번덕동에 있었지만 충렬사를 건립하면서 1972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류형의 장남 류충걸 때 진주류씨들이 공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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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명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보의 신도비. 홍보(洪靌)[1585~1643]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여시(汝時), 호는 월봉(月峰),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1585년 당시 형조좌랑을 지내던 홍난상(洪鸞祥)[1553~?]과 능성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하고 한성부 참군 등을 지낸 후 1615년(광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