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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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氏孝子旌閭閣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승대 |
건립 시기/일시 | 1865년 - 박씨 효자 정려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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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박씨 효자 정려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
성격 | 정려각 |
양식 | 홑처마 맞배지붕 목조 건물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에 있는 개항기 박태구·박만동·박태현의 효행을 기린 정려각.
[개설]
박태구(朴泰龜)는 매일 물고기를 낚아 어버이를 봉양하였으며, 어버이 상을 당해 여묘를 하였다. 박태현(朴泰鉉)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으며, 상을 당해 슬퍼하고 서러워하였다. 제삿날에는 늘 반드시 새 옷을 지어 여묘살이 하던 곳에서 불에 태워 드렸다. 박만동(朴萬東)은 어버이를 지성으로 섬겼다. 아버지 병환에 쾌유를 비니 산에서 영지를 얻고 물에서 잉어를 얻었다. 어머니 병환에는 손가락을 베어 입에 피를 흘려 넣어 목숨을 3일간 연장시켰다.
[위치]
박씨 효자 정려비(朴氏孝子旌閭碑)는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 선돌 마을 어귀이자 섬진강가 바위백이 위에 있다.
[변천]
1865년(고종 3)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여 박씨 효자 정려각을 지었다. 1901년 대홍수와 6·25 전쟁으로 효행을 기록한 문적들이 유실되고 정려각도 퇴락하여 중수하였다.
[형태]
정려각은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축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규모는 245×200㎝이다. 정려각에는 3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명 조선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박태구 지려(고종 3년 을축 1865년 8월 명정)[有明朝鮮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朴泰龜之閭(高宗 三年 乙丑 八月 命旌)]’, ‘유명 조선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박만동 지려(고종 3년 을축 1865년 8월 명정)[有明朝鮮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朴萬東之閭(高宗 三年 乙丑 八月 命旌)]’, ‘유명 조선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박태현 지려(고종 3년 을축 1865년 8월 명정)[有明朝鮮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朴泰鉉之閭(高宗 三年 乙丑 八月 命旌)]’ 등 3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