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40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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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農圖園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 542-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종구 |
준공 시기/일시 | 1952년 - 실습지, 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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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개장 시기/일시 | 1952년 |
폐지 시기/일시 | 1965년 |
개칭 시기/일시 | 1973년 - 농도원 부지 매각 |
최초 설립지 | 농도원 -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542-1 |
현 소재지 | 농도원 목장 - 용인시 원삼면 사암리 542-1 |
성격 | 농업 실습지, 목장 |
면적 | 45,000평 |
전화 | 031-321-0445 |
팩스 | 031-333-4514 |
홈페이지 | 농도원 목장(http://www.nongdo.co.kr) |
[정의]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목장.
[개설]
전국의 농촌청년들에게 과학적 영농방법을 터득하게 하여 우리나라 농업 발전을 도모하기위해 설립된 농도원은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폐업하였고 1973년 농도원 부지를 매입한 이가 농도원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며 목장을 경영,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립 경위]
1952년 미국에 유학하고 돌아온 강태국 목사가 한국농촌을 발전시키고 복음을 전달하기 위하여 용인군 원삼면 사암리 일원에 부지 6만평을 구입하였다.
이 부지위에 복음농업 전수학교(福音農業 專修學校)[3년제 중학과정]를 설립하고, 이학교 학생들에게 농업교육을 시키기 위하여 인근에 농도원을 설립한 것이 농도원의 시원이다.
설립 당시 학생들에게 과학적인 영농방법을 터득하게하고 콩, 고구마, 옥수수 신품종 등을 재배하며, 원삼면 일원에서 신품종을 보급하는데 기여하였다.
[변천]
농도원에서 재배한 농작물을 판매하여 그 수익금으로 학교를 운영하고 전국 농촌 청년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출발한 농도원은 가뭄으로 인한 흉작과 먼 소비시장으로 인한 과다한 운반비 등으로 운영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 1960년대 복음학교의 입학생이 줄어 들면서 결국 1965년 학교가 폐교되었고 이에 따라 농도원도 폐지되었다.
폐지전까지 농도원 운영을 책임지던 김용기 장로는 하남으로 이주해서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하였고 한국농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농도원은 1973년 부지를 매입한 이가 농도원 그 이름 그대로 농도원 목장을 설립, 현재에 이르고 있다.
농도원 목장은 2004년 친환경 시범목장으로 선정되었고, 2005년에는 한국종축개량협회에서 최고 아름다운 목장으로 선정되어 각종 낙농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활동]
현재 농도원 목장은 도시생활을 벗어나 자연속에서 쉬고 싶은 이들이나 낙농체험을 하고싶은 이들을 위하여 낙농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은 목장견학, 송아지우유주기, 건초주기, 젖짜기 아이스크림, 치즈만들기 체험을 만들 수있게하고 있다.
[현황]
1973년 새로 설립된 농도원 목장은 1990년 김용선에게 승계되어 현재의 농도원 목장으로 발전하였다.
현재의 현황을 보면 45,000평의 부지위에 사료포 30,000평, 초지 8,000평, 기타7,000평으로 구성되어있다.
[의의]
농도원은 농촌학생들이 공부하는 한편 실습을 통하여 우리나라 농촌발전에 초석이 되게하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설립된 곳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 정규학교가 늘어나자 학생 수가 줄고 농도원의 생산품은 소비시장이 좁아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1960년대 중반 모두 폐지되었다
그러나 복음학교 출신들은 졸업 후 성직자, 농부로 성장하여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 하였다. 특히 농도원을 경영하던 김용기 장로는 하남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 새마을운동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복음학교를 책임지던 류호정 박사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처럼 농도원은 우리나라 농촌발전에 선구가 된 실습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