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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휴모탁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00281
한자 優休牟涿國
영어음역 Uhyumotak-guk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집필자 윤대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삼한시대
시행연도/일시 삼한시대

[정의]

삼한시대 구로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한 54소국(小國) 중 하나.

[개설]

서울특별시 구로구 일대와 부천 지역은 일찍이 삼한시대에 마한 54개 성읍국가 중 하나인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으로 추정되며,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의 주거지 유적과 출토 유물은 이곳에 부족 연맹체 규모의 초기 국가가 들어설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음을 잘 보여 준다.

[관련기록]

삼한시대는 고고학계에서는 초기철기시대로 지칭하며, 본격적인 삼국의 쟁패가 전개되기 이전이다. 『삼국지(三國志)』「동이전(東夷傳)」 한조에는 당시 마한 사람들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그 백성은 토착 생활을 하며 농경을 하는데 잠상(蠶桑)을 하고 면포(綿布)를 만들 줄 안다. [중략] 산과 바다 사이에 거하며 성곽은 없다. [중략] 원양국(爰襄國)·모수국(牟水國) 등 54개 소국 가운데 큰 나라는 1만여 가(家), 작은 나라는 수천 가 총 십만(十萬) 호(戶)다. [중략] 장례 시 관(棺)은 있으나 곽(槨)은 없다. 말과 소를 탈 줄 모르고 말과 소는 장례를 치르는 데 다 허비한다. 구슬을 보배로 여기며 금과 은·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아니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기록은 진한조와 변한조에 “성책(城柵)이 있으며, 그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아니하다. [중략] 수레와 소·말을 탄다” 등의 기록과 상치되는 면이 많으며, 삼한 가운데 마한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였음을 고려할 때 위 기록은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내용]

1959년 이병도가 부천 일대를 우휴모탁국으로 비정하였으나, 이후 이 설은 천관우에 의해 부인되었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삼한시대 소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근거가 뚜렷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위치를 정하는 데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지』의 기록을 살펴보면 우휴모탁국은 백제국(伯濟國) 바로 두 번째 앞부분에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지』의 지명 기술 순서로 볼 때, 우휴모탁국은 백제의 근방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의 주거지 유적은 야트막한 구릉지에 위치하는데, 이러한 입지 조건과 함께 간 돌창·반달돌칼·돌도끼·숫돌로 사용된 지석, 돌 끌, 석검 파편 등의 출토는 당시 이곳에 살던 청동기 사람들이 농경 생활을 하였음을 알려 준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우휴모탁국의 직접적인 선주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부천에 청동기 사람들이 농경 생활을 하며 집단적으로 주거지를 형성하고 살았음은 이곳에서 초기 국가가 발생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변천]

우휴모탁국은 3세기 후반에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며, 427년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이후에는 고구려의 주부토군(主夫吐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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