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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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郡邑誌一八九九年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병훈 |
간행 시기/일시 | 1899년 - 청도군 『청도군 읍지』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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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서울 대학교 규장각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성격 | 읍지 |
저자 | 청도군 |
편자 | 청도군 |
간행자 | 청도군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18자 |
규격 | 25.8㎝[가로]|37.4㎝[세로] |
권수제 | 청도군 읍지 |
[정의]
1899년 읍지 상송령에 따라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
[개설]
청도군의 읍지(邑誌)는 18세기[정조], 1832년, 1871년, 1895년, 1899년 등 다섯 차례에 걸쳐 제작되었다. 2013년 현재 이들 판본은 서울 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중 1832년, 1871년, 1895년 판본은 영인본으로 출간되었다.
18세기에 간행된 판본은 정확한 작성 연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호구수가 1786년의 병오식(丙午式)을 기재하고 있고, 전결·전세·대동 등은 1785년의 을사조(乙巳條)의 내역을 기록하고 있어서 정조 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는 『여지도서(與地圖書)』[1757∼1765년]의 「청도군 읍지」와는 제언(堤堰) 조가 첨가된 것을 제외하고는 구성이 비슷하다. 또한 1832년에 만들어진 읍지와도 비슷한 항목이 많지만 강계(疆界), 능침(陵寢), 단묘(壇廟), 물산(物産), 한전(旱田), 수전(水田), 조적(糶糴), 읍재(邑宰) 등의 항목은 이후 명칭이 변경되거나 비슷한 항목끼리 통합되었다. 이렇게 볼 때 18세기에 제작된 『청도군 읍지』는 『여지도서』와 『경상도 읍지』[1832년]의 중간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서 그 상한은 1786년으로 볼 수 있다.
1832년 이후 정부의 주도 아래 전국적으로 읍지 편찬이 세 차례 더 진행되었고, 청도군 역시 이에 따라 동일한 시기에 읍지가 제작되었다.
[저자]
1899년(광무 3) 청도군에서 간행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1899년 내부(內部)의 읍지 상송령에 따라 청도군에서 만든 읍지이다. 전국적 읍지 편찬 사업을 조선 정부에서 마지막으로 실시한 것이기도 하다. 전국의 행정 구역이 개편된 이후이기 때문에 각 도의 명칭이 남도와 북도로 표기되고 각 읍의 주부군현(州府郡縣) 체제도 변경되어 표제만으로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청도군 읍지』[1899년]는 30일 이내에 작성해서 올리라는 명령도 있고 하여 전 시대 읍지를 정서(精書)하는 데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읍 사례는 첨부되어 있지 않고 각 군별로 분책(分冊)되어 있다.
[형태/서지]
표제는 ‘경상북도 청도군 읍지(慶尙北道淸道郡邑誌)’이며, 내제는 ‘청도군 읍지(淸道郡邑誌)’이다. 판본은 필사본(筆寫本)이며, 권책수는 1책[7장], 편저자는 청도군, 간행 연도는 1899년이다. 본문 앞에 청도군의 채색 지도(彩色地圖)가 그려져 있으며, 판본의 크기는 가로 25.8cm, 세로 37.4㎝이다. 서책 사주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선인 광곽(匡郭)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계선이 있다. 행자수는 10행 18자, 주(註)는 쌍행(雙行)이다.
[구성/내용]
내용은 권수의 채색 지도에 이어 강계(疆界), 관아(官衙), 객사(客舍), 근안고설(謹按古說),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관직(官職), 풍속(風俗), 방리(坊里), 전부(田賦),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관액(關阨), 진보(鎭堡), 산성(山城), 봉수(烽燧), 단묘(壇廟), 불우(佛宇), 공해(公廨), 교량(橋梁), 시장(市場),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과거(科擧), 인물(人物), 본조절효(本朝節孝), 도로(道路) 등으로 이루어졌다. 1899년의 『청도군 읍지』 내용은 1871년의 『청도 군지』와 비슷하나 보다 간략한데, 이는 명령을 받고 30일 이내에 올려야 하기에 많은 내용을 기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관액·진보·목장조는 항목만 있고 내용은 없다. 이외에 특이한 사항은 호구수와 전결수에서 이전의 읍지들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호구수는 1871년에 8,212호, 1895년 7,746호, 1899년 6,289호로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전결수 역시 1871년 3,897결 49부 5속, 1895년 3,830결 39부 6속, 1899년 4,152결 43부 5속으로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1899년에 간행된 『청도군 읍지』는 이전의 청도군 읍지들에 비하여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일부 항목, 특히 재정과 관련한 부분에서 이전 읍지와의 비교를 통해 그 변화 양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