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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민주 동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489
한자 淸道民主同盟
이칭/별칭 청도 민주 청년 동맹,민청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10월연표보기 - 청도 민주 동맹 조직
해체 시기/일시 1947년 5월 17일연표보기 - 청도 민주 동맹 해산
성격 좌익 청년 운동 단체

[정의]

광복 직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좌익 청년 운동 단체.

[개설]

1945년 8·15 해방 후 미군이 진주하는 10월까지 약 2개월간 청도 지역의 치안은 매우 불안했다. 청도 청년 동맹은 과도기의 질서 유지와 치안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설립 목적]

청도 민주 동맹은 조선의 진정한 민주국가 건설의 강력한 추진력이 되고 세계의 모든 진보적인 청년층과 협력해서 세계 평화 수립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1945년 10월 초 미 군정이 시작될 무렵 청도군에는 청도 청년 동맹청도 치안대 등 두 개의 청년 단체가 활동하였다. 이후 좌익 진영에서는 청도 청년 동맹을 해체하고 민주 청년 동맹으로 전환하여 활동을 재개하였다.

1947년 5월 17일에 미 군정청에서 공포한 행정 명령 2호, 즉 민청을 테러 단체로 규정하여 민주 청년 동맹 등록을 취소함에 따라 강제 해산명령을 받았다. 불법 단체로 규정된 민청은 5월 21일에 미소 공동 위원회가 속개되자 이를 강력하게 실천하기 위해 민청을 해산하고 노선과 조직을 그대로 계승한 조선 민주 애국 청년 동맹을 출범시켰다. 청도 민주 동맹도 이때 해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초기 청도 민주 동맹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지만, 여타 지역 민청과 같이 신탁 통치 지지와 서명 운동 전개, 친일파 및 일제 잔재 청산 주장, 좌익계가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 참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46년 10월 3월 경상북도 대구에서 발생한 10월 사건 당시 청도군 민주 청년 동맹 위원장이 대구에 갔다가 시위 현장을 접하고 돌아온 당일 민청 회원들은 청도 경찰서 앞에 집결하여 무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도 민주 동맹은 해방 정국 청도 지역 사회주의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좌익 청년 단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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