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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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蓴池里古墳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댐 수몰 지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용성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1년 - 순지리 고분 떼 영남 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소에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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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 순지리 고분 떼 경북 대학교 박물관, 대전 보건 전문 대학 박물관, 대구 교육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4년 - 순지리 고분 떼 경북 대학교 박물관, 대전 보건 전문 대학 박물관, 대구 교육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완료 |
소재지 | 순지리 고분 떼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355 일대 |
성격 | 고분 |
양식 | 돌덧널무덤|돌방무덤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에 있었던 고분 떼.
[개설]
순지리 고분 떼는 1993년∼1994년에 발굴된 고분 떼로 경주에서 청도로 향하는 길목에 형성된 것이다. 구덩식 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으로 구성된 고분 떼로 봉토가 잔존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5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 축조된 신라의 고분 떼이다.
청도 지역 동부를 관통하는 동창천의 중류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것으로 이 구역의 중심 고분 떼로 볼 수 있다. 고분의 축조 연대는 5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로 판단된다.
[위치]
고분 떼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순지리 355 일대이다. 고분 떼가 있는 곳은 운문댐의 서편에 해당하는 순지리와 금천면 임당리 사이에 남북으로 뻗는 산지의 동사면에 해당하고 운문면에서 운문사로 향하는 지방도 985호선에 접해 있다. 고분 떼의 서편 운문댐 둑의 아래에는 호산이 솟아 있다.
원래 고분 떼의 북편에는 동북의 청도와 경주 사이 경계에서 발원하는 동창천이 흘렀고, 남쪽의 운문산에서 북으로 흐르는 운문천이 이 고분 떼의 동북에서 동창천에 합류하여 그 주변에는 비교적 넓은 들판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곳은 경주에서 청도로 나아가는 길목에 해당되어 예로부터 인간의 거주 활동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운문댐이 건설되면서 1991년 영남 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이후 수몰 지역에 분포하는 고분에 대하여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 조사 당시 서에서 동으로 A∼D 지구로 구분하여 발굴하였다. A 지구에서는 고분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나머지 지구에서는 삼국 시대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고분의 발굴은 경북 대학교 박물관 [B 지구], 대전 보건 전문 대학 박물관[C 지구], 대구 교육 대학교 박물관[D 지구]이 1993년과 1994년에 걸쳐 시행하였다.
[형태]
봉토가 남아 있던 B 지구의 고분은 내부 주체가 돌방무덤이었다. 봉토는 이를 돌아가며 축조된 주구로 판단할 때 지름이 12∼13m 정도였다. 이외 봉분이 없어진 많은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구덩식 덧널무덤과 앞트기식 돌방무덤이었다.
돌방은 입구를 둔 앞트기식의 장방형이고, 경사면을 L자형으로 굴착하고 축조된 반지상식이었다. 돌방의 형태에 따라 비교적 너비가 넓어 방형에 가까운 것과 장방형 두 종류로 나뉜다. 입구는 경사면의 아래쪽에 해당하는 서쪽과 북쪽에 있었다. 돌방 내부 바닥에는 높이 30㎝ 정도의 주검받침을 설치하였는데, 2∼3 차례에 걸쳐 연이어 축조된 것으로 추가장을 실시한 것을 보여준다.
돌덧널은 돌방의 주변에 축조된 것으로 구덩이를 파고 그 내부에 장방형으로 축조된 것이다. 돌덧널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게 축조되었으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깬돌로 축조하였다. 이외 긴 판돌을 세우고 깬돌을 쌓은 것도 확인되었다. 돌덧널의 내부에는 돌방과 같이 비교적 높은 주검받침을 설치한 것이 많았다.
[출토 유물]
돌덧널에서는 굽다리 접시, 굽다리 사발, 연질바리, 손잡이 잔, 짧은 목 항아리, 긴 목 항아리 등의 신라 시기의 토기류와 쇠화살촉, 쇠칼, 쇠낫, 쇠도끼, 작은 칼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돌방에서는 짧은 다리의 굽다리 접시, 연질바리, 굽다리 바리, 손잡이 잔, 구가구연의 긴 목 항아리, 짧은 목 항아리, 굽다리 합 등의 토기류와 쇠칼, 가위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다.
[현황]
발굴 후 고분 떼는 운문댐에 의해 수몰되어 있다. 그러나 발굴된 지점의 상부에 해당하는 현재 운문댐의 수몰선 위에도 고분이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의의와 평가]
고분군이 있는 곳은 경주의 건천에서 고개 너머 산내를 거쳐 청도로 향하는 중간 기착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록 소규모이나 청도 동창천 유역의 고분 가운데는 가장 현저한 고분으로 청도 동부 지역의 중심지 고분임을 알려준다.
아직 4세기나 5세기 전반의 비교적 이른 시기 고분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앞으로 청도 지역의 삼국 시대 세력 분포 현황, 신라의 청도 지역과 낙동강 유역 진출 과정 등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고분은 운문댐에 의해 수몰된 대천 마을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넓은 경작지를 가진 세력 집단의 유력자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