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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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北道淸道郡五各驛田畓斗數穀數作人姓名成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광우 |
[정의]
1905년 5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관내 각 역의 전답 도세 및 작인의 성명 등을 기재한 장부.
[저자]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역토(驛土)는 조선 시대 각 역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 역마다 두었던 토지로, 지방 재정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하지만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역토를 포함한 각종 역둔토(驛屯土)의 관리는 중앙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1900년(광무 4)부터는 대한 제국의 황실 재정을 담당하던 내장원(內藏院)이 역둔토를 관리하였으며, 여기서 분리된 경리원(經理院)이 이어서 역둔토 관리를 맡게 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에는 조선 후기부터 내려 온 성현역(省峴驛), 유천역(楡川驛), 매전역(買田驛), 서지역(西芝驛), 도서역(島棲驛) 등 모두 5개 역이 있었다. 이들 역에도 역토가 있었으며, 대한 제국 시기에 경리원이 관리하였다. 경리원의 역둔토 관리는 실제 황실 재정 강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경리원은 각 고을에 지시하여 관내에 산재한 역둔토의 면밀한 조사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1905년 5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작성한 『경상북도 청도군 오 각 역 전답 두수 곡수 작인 성명 성책(慶尙北道 淸道郡 五 各 驛 田畓 斗數 穀數 作人 姓名 成冊)』도 이때 경리원 지시로 엮여진 것이다.
[형태/서지]
1책 112장이며, 크기는 가로 30.6㎝, 세로 29.2㎝이다.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이며, 필사본으로 작성되었다. 본문에서 ‘청도군수지장(淸道郡守之章), 경북봉세관장(慶北捧稅官章), 청도군인(淸道郡印), 경북봉세관인(慶北捧稅官印)’과 같은 관서 인장이 확인된다.
[구성/내용]
청도군에 있는 다섯 개의 역별로 전답 도세(賭稅) 및 작인(作人) 성명 등을 기재하였다. 각 역마다 우선 전답의 총 결수를 기재하는데, 여기에는 철도 용지와 철역 연와 공장(鐵驛煉瓦工場) 부지 등은 제외하였다. 결수로 기재하였기 때문에 이를 다시 상·중·하로 등급을 나누었으며, 각 등급마다 두락(斗落) 당 도조의 액수를 정해 놓았다. 대전(垈田) 역시 두락 당 대전(垈錢)를 기재하였다.
이어서 각 역의 전답을 대전질(垈田秩), 신대전질(新垈田秩), 시경전질(時耕田秩), 시전답질(時田畓秩)로 구분하였다. 또한 각 필지에 대한 자호(字號), 지번(地番), 지목(地目), 야미수(夜味數), 두락수(斗落數), 결부수(結負數), 도조 액수, 작인 성명을 기재해 놓았다. 작성 책임자로 청도 군수 이재기(李在紀)‚ 사검관(査檢官) 이규직(李圭直)을 비롯하여 조사와 관련된 사음(舍音), 두민(頭民), 지사인(知事人)의 성명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성책에서 확인되는 청도군의 역토 합계는 전(田)이 2‚619두 8승락지(升落只)이고‚ 답(畓)이 2‚049두 5승락지이며‚ 도조는 태(太) 1‚383두 7승 3홉‚ 조(租)는 17‚841두 4승‚ 대전(垈錢)은 522냥 2전 8푼으로 나타난다.
[의의와 평가]
대한 제국 시기 역둔토의 존재 양상과 토지 소유 관계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