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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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鄕案正名錄 |
이칭/별칭 | 좌목,정명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광우 |
간행 시기/일시 | 1911년 9월 - 『청도 향안 정명록』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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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6년 - 영남 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소의 『영남 향약 자료 집성』에 수록 |
소장처 | 계명 대학교 동산 도서관 -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 1000 |
성격 | 고문헌|향안 |
권책 | 1책 |
행자 | 8행 17자 |
규격 | 20㎝[책자 가로]|28㎝[책자 세로]|16.2㎝[반곽 가로]|20.8㎝[반곽 세로] |
어미 | 내향 이엽 화문 어미 |
권수제 | 청도 향안 정명 구록 |
판심제 | 청도 향안 정명 구록|청도 향안 정명록 |
[정의]
1911년 9월에 인간된 경상북도 청도군의 향안.
[개설]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 鄕案 正名錄)』은 1911년 9월에 인간(印刊)된 향안이다. 일제 강점기에 인간되었지만 1599년(선조 32)부터 1700년(숙종 26)까지 조선 시대 경상도 청도군의 유향소 향원(鄕員) 393명의 명단을 수록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청도 향안 정명록』은 ‘좌목, 정명록’으로도 불린다.
[저자]
『청도 향안 정명록』은 향안이지만, 유향소와 그 후신인 향청(鄕廳)이 이미 혁파된 이후이기 때문에 저자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향청이 혁파된 이후 향안과 같은 자료가 향교로 이관되었고, 향교가 사족들의 모임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조선 시대 향안 입록자의 후손들이 청도 향교(淸道 鄕校)를 매개로 하여 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간행 경위]
마지막에 ‘신해 9월 일 인간(辛亥 九月 日 印刊)’이라 명기되어 있는데, 신해년은 1911년으로 이때 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청도 향안 정명록』을 간행할 당시의 서문(序文) 등이 수록되지 않아서 명확한 간행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1911년은 신분제가 폐지된 시기로 조선 시대 전통 사족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표방할 구실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에 청도군의 전통적인 사족들, 즉 1599∼1700년 사이 청도 향안에 입록되었던 사족들의 후손들이 사회적 지위를 표방하고 상호 간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전에 작성된 수종의 향안들을 정리하여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서지]
표제는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鄕案正名錄)’이고, 권수제는 ‘청도 향안 정명 구록(淸道鄕案正名舊錄)’, 판심제는 ‘청도 향안 정명 구록(淸道鄕案正名舊錄)’과 ‘청도 향안 정명록(淸道鄕案正名錄)’이며, 목활자로 인쇄되었다.
장정은 선장(線裝)이며, 총 1책 55면이다. 책자의 크기는 가로 20㎝, 세로 28㎝이며, 반곽(半郭)은 가로 16.2㎝, 세로 20.8㎝이다. 사주단변(四周單邊)에 유계(有界)이며, 자수(字數)는 8행 17자이다. 어미는 내향 이엽 화문 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로 확인된다.
[구성/내용]
『청도 향안 정명록』은 크게 「청도 향안 정명 구록」과 「청도 향안 정명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청도 향안 정명록」 앞뒤로는 향안 작성 경위와 의의를 언급한 ‘지(誌)’를 수록해 놓았다.
먼저 「청도 향안 정명 구록」은 1599년부터 1657년까지 11회에 걸쳐 향안에 입록된 향원 180명의 명단, 즉 좌목(座目)을 수록해 놓았다. 입록자의 이름을 먼저 기재하고, 마지막에는 입록된 시기와 유향소의 임원인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의 이름이나 성씨를 함께 기재하였다.
「청도 향안 정명록」의 서두에는 1661년 박동효(朴東孝)에 의해 작성된 지(誌)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1661년 청도 군수였던 이찬한(李燦漢)이 고을의 사족들과 더불어 이전에 작성된 여러 향안의 좌목을 참고하여, 당시 생존한 향원들이 수록된 「청도 향안 정명록」을 새롭게 정리했다며, 그 작성 경위를 밝혀 놓았다. 따라서 「청도 향안 정명록」에는 「청도 향안 정명 구록」에 수록된 동일 인물들도 확인된다. 「청도 향안 정명록」의 좌목은 1661년, 1693년, 1700년 모두 세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213명의 향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중 「청도 향안 정명 구록」과 중복되는 인물은 87명이다. 「청도 향안 정명록」의 마지막에는 1712년 7월 1일 이광절(李光節)이 작성한 지(誌)를 수록해 놓았다. 여기에는 지금 세속이 어지러워 바로잡기 위해 선부로(先父老)의 성명이 수록된 향안을 새롭게 작성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편 『청도 향안 정명록』을 간행하면서 참고한 향안류는 1992년 영남 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소에서 영인·간행한 『경북 향교 자료 집성』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들은 향청이 혁파된 이후 청도 향교로 이관되었던 자료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향안 작성의 추이와 16∼17세기 청도 지역 재지 사족의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향안에 입록된 향원들의 이름과 더불어 본관 및 직역(職役) 등을 함께 명기하였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분석은 향안 입록자의 신분적 성격과 유향소 운영을 주도하던 청도 지역 사족 가문들의 추이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