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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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友坤 |
이칭/별칭 | 석농(石農)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손복수 |
[정의]
경상북도 청도 출신의 서화가.
[개설]
김우곤(金友坤)[1909∼1951]은 본관이 김해이며, 탁영 김일손의 15세손으로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백곡에서 모계 김용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서화에 천재적 소질이 있어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및 사군자에 통달하여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활동사항]
김우곤은 유년 시절부터 다재다능하여 독학으로 사서와 주역(周易)을 탐독하였다. 6세 때부터 한학에 입문하여 학문을 익혔고, 어릴 적부터 서화에 천재적 소질이 있어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및 사군자에 통달하여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이루었다. 또한 강의록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비롯하여 기하학과 대수학을 공부하는 등, 당시로는 앞을 내다보는 진보적 성향과 안목도 있었다.
김우곤은 청도와 대구를 중심으로 비교적 많은 서화 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 후반에는 대구의 교남 서화회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5년에는 경주 김유신 장군의 묘비에 새겨진 1천여 자를 일자 일획(一字一劃)도 개서(改書)하지 않고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경주 지역 서예가들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1925년에 창립된 청도 유도회의 창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모계 학원 초대 상무이사로 육영 사업에 헌신하였다.
[저술 및 작품]
20세기 대구와 경북 지역의 전통 회화는 다른 지역과 달리 사군자화를 주 영역으로 고수하면서 묵죽과 묵란 중심의 사의적 화풍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한문과 시문·서화의 전통 교양을 중시하는 대구·경북 지역의 문화적 분위기와 시·서·화를 겸비했던 석재 서병오·죽농 서동균을 계승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이를 일명 석재 화풍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김우곤은 서동균을 비롯한 영남 지역 서예·서화가들과 많은 교류를 하면서 이러한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우곤은 묵죽·묵란·묵매·묵국·서예 등 많은 유작과 유품들을 남겨 그의 작품 세계를 비교적 쉽게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한시 작품이 여러 편 남아 있는데, 「단양우음(端陽偶吟)」·「지(紙)」·「붓[筆]」·「먹[墨]」·「벼루[碩]」·「연죽(煙竹)」·「화로(火爐)」·「담배갑[草匣]」·「등(燈)」 등이 있다. 김우곤의 유품 가운데에는 생전에 수집한 겸재 정선의 「화조도」와 오원 장승업·석파 이하응·안향·강세황·석재 서병오·위창 오세창·죽농서동균 등의 작품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