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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산제 및 관련자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482
한자 龍湖山祭-關聯資料
이칭/별칭 용산 산신제 자료
분야 역사/전통 시대,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임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형문화유산 제44호로 지정
소장처 용호산제 및 관련자료 - 연기향토박물관|장영석
성격 문서
관련 인물 도인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4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 용산에서 지낸 산제와 관련된 고문헌.

[개설]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용호리에는 용산(龍山)이 있다. 옛날 도인이 동진강을 건너다 용산의 모습을 보고 산이 영산(靈山)이니 산제를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고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하여 산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마을에 액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자식이 늘어나 자손이 번창하였다.

하룡마을 사람들은 매년 동짓달 초이튿날에 마을의 안녕과 집집마다 한해 무사하기를 비는 산제를 지냈다. 산제가 끝나면 산제 관련 문서를 작성하여 산제당에 남긴다.

마을이 존재할 때는 이 문서들을 마을회관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이를 관리한 장래묵이 2011년에 사망하고 2012년부터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용호리는 건설 지역이 되어 마을 주민은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하였고, 용산 정상에 있는 산제단과 중턱에 있는 산제당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용호산제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모여 그해에 산제를 지낸 내역을 기록하였다. 산제에 참석한 명단과 분방기, 산제에 기부한 내역과 지출 내역을 적은 장부가 전하고 있다.

하룡마을 사람들은 수백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산제를 지내왔다. 그러나 현재는 주민이 모두 마을을 떠났기 때문에 조치원에 거주하는 장영석이 주축이 되어 산제를 지내고 있다.

용호산제 관련 자료는 조선 후기부터 기록이 전하고 있다.

[형태]

용호산제 관련 자료는 모두 책자 형태로 전하여진다.

[구성/내용]

용호산제 관련 자료는 모두 책자 형태로 전해지는 데 산제가 끝난 후 마을회관에 모여 기록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개초기(蓋草記)

개초기는 한 권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25.6×28.2㎝이다. 1933년부터 1962년까지 산제에 참여한 참여자 명단이 적혀 있다.

2. 동계좌목(洞稧座目)

동계좌목은 한 권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24×28.7㎝이다. 표지에는 임신 10월 25일 중수(壬申 十月 二十五日 重修)라고 쓰여 있다. 이에 따라 1932년에 쓰여졌으며, 산제가 끝나면 마을회관에 모여 기록하였다.

동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기록한 좌목(座目)이다. 장헌진(張憲鎭)·임노정(林魯禎) 등 50여 명의 이름들이 성명, 생년, 자(字) 등 순서로 기록되어 있다.

3. 수계봉상기(修稧捧上記)

수계봉상기의 크기는 24.0×22.8㎝이다. 1912년 9월 28일부터 1962년 10월 25일까지 수계(修稧)에서 거둔 도조(賭租)[남의 논밭을 빌려서 부치고 논밭을 빌린 대가로 해마다 내는 벼]를 기록한 봉상기(捧上記)이다.

도조를 낸 사람과 금액, 계에서 사용한 명목과 금액 등이 기재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200여 년 전부터 산제를 지냈다. 과거에 한 도인이 동진강[미호천]을 건널 때 용산을 바라보면서 이 산에 제사를 지내야 마을에 어린아이가 늘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산제를 지내자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늘어났고, 그 후 계속 산제를 지냈다.

[절차]

용호 산제 보름 전에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그해 생기와 복덕을 가려 제관을 뽑는다. 뽑힌 제관들은 집안에 금줄을 친 후 바깥 출입을 삼가고, 말을 적게 하며, 매일 찬물로 목욕을 한다.

산제 날에는 제당에 모여 제수를 준비한다. 탕을 끓이고 뫼(밥)를 짓는다. 시간이 되어 제당으로 제물을 모두 옮긴 후 가운데에 쇠머리를 놓고 앞에 과일, 그 뒤에 나물 순으로 진설한 후 산제를 시작한다.

산제는 진설, 강신, 참신, 소지, 음복 순으로 한다. 산제가 끝나면 제당으로 내려왔다가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온다.

[현황]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인근 도시로 모두 이주하였지만 현재 장영석[조치원 거주, 성원문화사 경영] 주축으로 산제를 지내고 있다.

문서는 연기향토박물관과 산제를 주관하는 장영석이 보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용호 산제는 수백년 동안 살아오면서 마을 뒷산인 용호 산신령께 해마다 정성을 다하여 산제를 올리면서 한 해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제례이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문서는 마을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산제에 참여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값진 자료이다.

특히 세종특별자치시 건설로 인하여 마을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이기 때문에 이 관련 자료를 근거로 언제든지 용산의 산제를 평가받을 수 있고, 중단된다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복원할 수 있는 자료이기에 소중하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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