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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552
한자 陳羅里出土遺物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번지 일원
시대 선사/석기,선사/청동기
집필자 김구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2년 7월 29일 - 진라리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출토|발굴 시기/일시 2003년 5월 30일 - 진라리 유적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현 소장처 국립 경주 박물관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76
출토|발견지 진라리 마을 유적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 답918-1번지 일원지도보기
성격 유물
소유자 국립 경주 박물관
관리자 국립 경주 박물관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의 유물.

[개설]

영남 문화재 연구원이 2002년 7월 29일∼2003년 5월 30일에 걸쳐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건설과 청도∼남천 간 국도 25호선 건설 과정에서 두 차례 실시된 발굴 조사 중 2005년 보고서가 발간된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다.

이곳에는 신석기 시대의 종말기 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2점을 빼면 모두가 청동기 시대의 유물들인데 토기류 353점, 석기류 227점, 옥류 3점 등 모두 583점이다. 토기류에는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343점, 흙으로 구운 가락바퀴[土製紡錘車] 10점이 있다. 석기류는 다시 무기·농공구·조리 용구·석기 제작과 관련한 도구 및 기타 석재들로 나뉘는데, 간돌검[磨製 石劍] 7점, 돌화살촉[石鏃] 16점, 반달칼[半月形 石刀] 5점, 바퀴날 돌도끼[環狀石斧] 3점, 조갯날 돌도끼[蛤刃石斧] 8점, 주상 편인 석부[柱狀片刃石斧] 9점, 외날 돌도끼[扁平片刃石斧] 7점, 홈자귀[有溝石斧] 1점, 돌끌[石鑿] 2점, 대팻날 1점, 원판 모양 석기[圓板形 石器] 2점, 부리 모양 석기 11점, 갈돌[碾石棒] 2점, 돌공[石球] 3점, 공이 1점, 숫돌[砥石·礪石] 27점, 모룻돌 1점과 이 밖에 몸돌·박편·석재 등 123점이 있다. 옥류는 장신구로 대롱구슬[管玉] 1점과 꾸밈구슬[飾玉] 2점이 출토되었다. 현재 이 유물들은 국립 경주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형태]

1. 토기

진라리 유적에서 나온 빗살무늬 토기 2점은 모두 겹아가리 토기[二重 口緣 土器]로 율리식 토기(栗里式 土器)라고도 부르는 신석기 시대 종말기의 것이다. 한 점은 역삼각형 몸통에 아가리 지름이 40㎝를 넘는 큰 토기이고, 나머지 한 점은 곧추선 아가리 조각인데 윗면은 편평하게 처리되었다.

민무늬 토기의 기종은 크게 바리 모양 토기[鉢形 土器], 항아리 모양 토기[壺形 土器], 독 모양 토기[甕形 土器]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체로 음식 그릇[食器]으로 쓰인 작은 그릇보다는 저장 용기로 이용한 큰 바리나 항아리·독 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음식을 삶거나 끓이는 데 사용한 자비 용기(煮沸 用器)도 포함된다.

집자리 형태별로 출토된 토기를 살펴보면, 먼저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골아가리 무늬 토기[口脣 刻目文 土器], 골아가리 무늬+짧은 빗금무늬 토기[口脣 刻目·短斜線文 土器], 골아가리 무늬+퇴화된 겹아가리 짧은 빗금 무늬[口脣 刻目·退化 二重 口緣 短斜線文] 토기, 구멍무늬 토기[孔列文 土器], ×선 무늬+구멍무늬 토기, 순수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赤色 磨硏 土器]가 나오고,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골아가리 무늬 토기, 구멍 무늬 토기, 순수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와 손잡이 달린 붉은 간토기[橫耳附 赤色 磨硏 土器]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후 송국리 단계인 말각방형과 원형 집자리에서는 매몰토 출토품을 제외하면 문양이 베풀어진 토기는 보이지 않는다.

즉 말각방형 집자리에서는 순수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와 손잡이 달린 붉은 간토기만 나온다. 그리고 원형 집자리에서도 순수 민무늬 토기와 붉은 간토기만 보이는데 이 시기에는 바리 모양 토기에서 젖꼭지 모양의 손잡이가 붙은 것이 많이 나타난다. 고인돌에서는 목 부분이 안으로 경사져 오른 붉은 간토기[頸部 內傾 赤色 磨硏 土器]가 부장품으로 나오고 있다. 이 밖에 흙으로 구워 만든 유물로, 실을 잣는 가락에 끼워 회전을 돕는 가락바퀴가 여러 집터에서 보편적으로 나오고 있어 직조 기술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2. 석기

진라리 유적에서 출토한 석기를 생활 유물과 부장 유물로 구분해 살펴보면, 먼저 생활 유물 가운데 무기류에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있고 이 밖에 곤봉두의 일종으로 중앙에 자루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뚫렸고, 동그란 가장자리를 따라 날을 세운 환상 석부가 있다.

집자리에서 출토한 간돌검은 검신이 전부 삼각형에 가깝고 능각이 서지 않은 단면 타원형의 것으로 세장방형 집자리[16·71호]에서 2점, 장방형 집자리[4호]에서 1점, 화덕 자리가 있는 말각방형 집자리[72호]에서 1점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집자리 71호의 것은 이단 병식 석검[二段 柄式 石劍]으로 검신 길이 5㎝ 내외의 소형이며, 병부 상단의 한 쪽 면에는 성혈과 같은 5개의 홈이 새겨져 있어 의례용으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다. 돌화살촉은 세장방형 집자리[3·10·71호]에서 3점, 말각방형 집자리[93호]와 원형 집자리[1호]에서 각 1점씩 출토하였다. 3호에서 납작 뿌리 세장촉[扁平莖 細長鏃], 10호에서 나래 달린 삼각 모양 납작촉[三角 灣入 扁平鏃], 71호에서는 피홈[血溝]을 낸 납작 뿌리 세장촉이 나왔고, 말각방형 집자리[93호]에서 납작 뿌리 총알 모양촉[扁平莖 彈頭形鏃], 원형 집자리[1호]에서 석창 모양의 슴베가 없는 촉[石槍形 無莖鏃]이 나왔다. 진라리 유적에서 출토한 돌화살촉은, 납작촉을 제외한 나머지는 슴베 유무를 불문하고 전부 촉신 단면이 마름모꼴이면서 그 하부를 편평하게 갈아내었으며, 슴베가 달렸더라도 아주 짧고 작은 특징을 보인다.

생활 유물 가운데 가장 많이 출토된 것은 돌도끼 종류이다. 돌도끼는 날 모양과 전체적인 형태에 따라 기능이 각각 다르다. 나무를 찍어 자르고 쪼개는 것은 양날을 가진 조갯날 도끼가, 목재 가공구로 크게 깎아 내는 용도로 쓰이는 것은 외날을 가진 자귀류로 주상편인 석부와 홈자귀가 있다. 이들과 달리 몸통이 판상으로 된 외날 도끼로, 면을 고르는 데 사용하는 자귀날과 대팻날이 있다. 그리고 홈을 파는 데 이용되는 돌끌도 보인다. 이 가운데 주상편인 석부는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4점, 말각방형 집자리에서 3점, 수혈 유구에서 2점이 나왔고, 조갯날 도끼는 세장방형 집자리에서 4점, 방형 집자리에서 1점, 말각장방형 집자리에서 2점, 수습된 1점을 포함하여 8점이 나왔다. 이러한 돌도끼류는 주된 기능 외에도 때에 따라서는 농경구 등 다목적 용도로 변용하여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농사 도구로는 이삭을 따는 반달칼이 5점 나왔는데 긴 네모꼴 돌칼[長方形 石刀]은 세장방형 집자리 3호와 54호에서, 빗 모양 돌칼[櫛形 石刀]은 말각장방형 집자리 30호와 지석묘 1∼3호 묘역 시설 내에서 각각 1점씩 출토했다. 그리고 세장방형 집자리 86호에서 배 모양 돌칼[舟形 石刀]을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박편 석기(剝片 石器) 1점이 있다.

조리 용구로는 곡식을 갈거나 찧고 빻는 데 이용한 갈돌과 갈판, 공이 등이 있다. 이 밖에 토기 제작 시 밑받침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판 모양 석기와 용도가 불분명한 부리 모양 석기, 그리고 석기를 만들 때 받쳤던 모룻돌과 석기 제작을 위한 몸돌 및 석재, 깨여져 나온 조각 등이 많이 나왔다.

이와 더불어 숫돌이 27점으로 압도적인 숫자를 점하고 있는데, 이는 건축과 농경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비롯하여 의기 등 석기의 종류가 다양화하고 많이 제작·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껴묻거리로는 고인돌 등 무덤에서 나온 돌단검과 돌화살촉, 돌끌이 있다. 고인돌 1호 무덤에서 유절 병식 석검, 3호 무덤에서 장신(長身)의 유사 유절병식 석검과 돌화살촉으로 납작 뿌리촉 3점, 뾰족 뿌리 세장촉 7점이 나왔고, 4호 무덤에서는 홈자루식 간돌검[有溝莖式 石劍]과 납작 뿌리 세장촉, 돌끌이 함께 나왔다.

3. 옥기

장신구로 대롱 구슬[管玉] 1점과 꾸밈구슬[飾玉] 2점이 나왔다. 세장방형 집자리[54호] 출토품은 녹회색의 아마존석으로 만든 지름 1㎝ 남짓한 동그란 식옥으로 구멍이 뚫린 상부는 얇고 아래쪽이 두터우며, 최대 두께는 5㎜ 정도이다. 원형 집자리[41호] 출토품은 유백색의 옥석제로 만든 길이 3.1㎝, 지름 1.3㎝ 크기의 대롱 구슬로 그물추와 비슷한 모양새이다. 고인돌[2호] 출토품은 청록색을 띠는 아마존석으로 만든 길이 1.3㎝의 작은 반원형 식옥이다. 배가 다소 부른 몸통 상부에는 내측 가장자리에 미약한 홈이 나 있고, 중앙에는 끈을 꿸 수 있게 구멍을 하나 뚫었다.

[의의와 평가]

진라리 유적 출토 유물은 토기나 석기 조합을 통해서 이곳 주민들이 전적으로 농경 위주의 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으며, 각 유물의 교차 편년에 의해 유적의 변천 과정을 유기적으로 살필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작게는 청도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첩경이 되고 크게는 주변 지역의 여러 문화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청동기 시대의 문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큰 구도 속에서 과거를 조명하고 복원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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