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765
한자 內里內洞洞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여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할배당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내동 마을 버스 정류장 입구 느티나무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매당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내동 마을 입구 오른쪽 산 능선 느티나무
의례 장소 용각산당[산신당]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 산2 용각산 정상 부근지도보기
성격 민간 의례|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오후 6시
신당/신체 할배당[느티나무|할매당[느티나무]|용각산당[산신당]|부처당|거리당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내리에서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청도읍 내리의 내동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이 되면 오후 6시 무렵에 마을 입구의 할배당 나무와 할매당 나무, 그리고 용각산 정상의 용각산당에서 동제를 올리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내리 내동 동제 의 동제당은 용각산 정상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는데, 이 동제당의 위치를 정하는 데에 관련한 전설이 전하여 온다. 전체 가구 약 65가구가 거주하는 내리 내동 마을은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집성촌인데, 이곳에 약 17∼18세기 무렵 김해 김씨의 선조들이 들어와서 마을의 터를 잡았다고 한다. 마을의 터를 잡고 나서 동제당을 정하려고 마을에서는 연을 띄웠는데 하늘로 띄운 연이 용각산 정상 근처인 현재의 동제당 위치에 떨어지게 되어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제당을 만들고 산신당 또는 용각산당이라 명하였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내동에서는 마을 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마을 뒷산인 용각산의 산신당, 이렇게 총 세 곳에서 동제를 지낸다.

느티나무는 각각 할배당과 할매당으로 불리는데, 할배당은 마을 입구의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서 약 10m 정도 아래에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이다. 할매당은 이보다 더 마을 입구에 가깝다. 청도읍 안인리 곰실 마을에서 내동 마을로 오는 입구 언덕을 넘을 때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바로 오른쪽 언덕에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바로 할매당이다.

또한 산신당으로 구분되는 용각산당은 마을의 뒤편에 행정적으로는 매전면과 경계를 이루는 곳에 있다. 단칸으로 주변에 돌담을 쌓아 두른 곳으로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기와지붕 집이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제단 위에 한지로 만든 신체가 조성되어 있다. 산신당은 30년에 걸쳐 약 두 번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입구 나무가 손실되어 새로 나무 벽채를 새로 조성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벽채에 있던 산신도 등은 모두 유실되었다. 이후에 기와가 무너져 내려 새 기와를 올렸다. 주변으로 잡목들이 두르고 있고 앞쪽으로는 약간의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산신당 아래쪽에는 임산 도로가 지나간다.

산신당 우측에는 부처를 모신 감실이 있다. 높이 40㎝, 너비 20㎝, 폭 20㎝ 정도의 감실 내부에는 길이 약 25㎝, 폭 10㎝ 정도의 입석이 높여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부처당이라고 부르며 동제를 지낼 때 가장 먼저 제를 올리는 곳이다.

[절차]

내리 내동 동제 는 보통 정월 초사흗날 청도읍 방면에서 해가 지는 오후 6시 무렵에 제를 지낸다. 과거에는 정월 초이튿날 또는 초사흗날로 날을 받아서 지냈는데, 음력 초이튿날이 제삿날이 되면 마을 내 친인척들이 아직 거주하고 있고 정초에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아예 정월 초사흗날로 고정하여 제를 지내고 있다.

과거에는 제관(祭官) 한 명과 유사(有司) 두 명을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맞추어서 선출하였다. 집에 우환이 없고 임신한 사람이 없으며 어린 아기가 없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하는 50세 이상 되는 깨끗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출하였다. 하지만 제관 선정에 어려움이 많아 1990년대 이후부터는 마을 이장이 무조건 제관을 맡아 지내는 것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제삿날 아침이 되면 제관인 이장은 청도읍 장에 가서 제물을 구매한다. 수송아지 한 마리를 준비하고 무쇠솥으로 지은 밥과 삼색 나물, 과일, 조기 등을 준비한다. 수송아지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몰고 가서 제당 50여m 아래 샘에서 잡아서 생것으로 준비한다. 잡은 소는 내장을 버리지 않고 총 네 덩어리로 구분한다. 제당 아래 50m 아래에는 두 개의 샘이 있는데, 하나는 잡은 소나 그릇 등을 씻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밥을 하는 샘이다. 밥을 하는 샘은 용샘으로 불리는데, 과거에 기우제를 지냈던 장소이기도 하다.

무쇠솥에 찹쌀만을 넣어 밥을 짓고 무쇠솥으로 지은 밥과 소고기, 삼색 나물, 과실, 감주가 준비하여 제관만 먼저 올라가서 산신당 옆 부처당에 제를 올린다. 이때 부처당에는 참기름을 부어 넣은 종지에 불을 지펴 둔다. 부처당에는 제관만 참석하여 제를 올린 후 축문을 읽는다. 이후 헛기침을 올리면 유사 두 명이 올라와서 산신당에 올리는 제에 참석한다. 산신당에는 무쇠솥으로 지은 밥을 제외한 나머지 음식을 동일하게 올린다.

산신당에서는 잔을 한 잔만 올리고 절하는 단잔 배례(單盞拜禮)를 하고 축문은 읽지 않고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일]만을 올린다. 소지는 산신(山神)과 동신(洞神),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올린다. 소지를 마치면 유사는 고깃덩어리를 준비하여 산신당 좌측에 위치한 느티나무 두 그루에 별도로 제사를 올린다. 이때 다른 행위는 없으며 고깃덩어리를 올리고 절만 올린다. 이는 거리당이라 불리며 산에서 내려오는 호랑이를 위한 제사라 한다.

산신당에서 제가 마치면 제관과 유사는 제물을 챙겨서 샘으로 다시 내려온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음복을 하고 나서 마을 입구로 내려온다. 마을 입구에는 할매당과 할배당이라 불리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곳에서 찰밥이 아닌 쌀밥 두 그릇과 조기 두 마리, 소고기, 삼색 나물, 과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주를 준비하여 제를 올린다.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하게 초헌(初獻)·아헌(亞獻)·종헌(終獻)의 순서로 잔을 올리며 축문과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제는 마치게 된다.

[축문]

축문의 내용은 용각산 산신과 동신을 먼저 위하고,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마소 등 가축들을 위해서도 복을 기원한다. 과거에는 축문은 축관을 별도로 선정하고 동제를 올릴 때마다 새로 만들었지만, 동제의 간소화로 축관을 별도로 선정할 수 없는 현재의 축문은 전해지는 내용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부대 행사]

정월 초이튿날 저녁부터 초사흗날 제를 올리기까지 마을에서는 전 주민들이 육류와 물고기 등을 먹지 못한다. 제관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이 비린내 나는 것이라면 먹지 못하며 제사가 끝난 후에야 섭취할 수 있다.

동제가 끝나면 마을 회관에서는 동네 남자들만 나와서 제관과 유사를 기다린다. 마을에서는 제관과 유사에게 인사를 행하고 음복을 한다. 제사의 모든 과정에는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다. 동제를 마치고 마을 회관에서 음복을 할 때에도 남자들만 참석하며 제사 준비 과정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모두 남자들이 담당한다. 이후에 정월 초나흗날 아침이 되면 여자를 포함한 모든 마을 주민이 마을 회관에 모인다. 소고기는 모든 가구에 동일하게 나누어 주며, 나머지 음식은 함께 음복한다. 이후 대동회를 개최하여 한 해의 결산 등을 행한다.

[현황]

2013년 내동 마을에서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잡던 것에서 도축한 소고기와 내장을 구매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원래는 송아지 도축을 아무데서나 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었지만 내리 내동 동제를 위한 송아지 도축은 군청에서 허락해 줄 정도였다. 도축과 관련하여 옛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과거 일제 강점기에 일본 경찰이 내동 마을의 동제당 도축을 금지하고 제관을 구속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제를 지내지 못한 그날 저녁, 호랑이가 경찰서에 나타나 으르렁거리자 일본 경찰이 무서워하며 제관을 풀어 주었고, 그 이후로 내동 마을에서만 송아지를 도축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내동 마을에서 행하는 도축은 마을의 동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였지만, 마을의 노령화와 인구 감소 탓에 이를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자 2013년에는 도축한 소를 구매하는 것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제관의 선출 방식이나 제를 올리는 과정 등도 조금은 간소화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가 동제를 절대로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려는 방안으로 생각하며 동제를 계속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