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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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군자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군자봉에 얽힌 설화」는 부유하고 권세가 있으나 인심이 고약한 유씨 집안이 군자봉을 당초보다 석자 석치를 낮게 하라는 지관[유씨가 때려 죽인 종의 아들]의 말을 들어 유씨 집안의 권세가 기울어졌다는 산악전설이자 복수담이다. 시흥문화원 홈페이지에는 과거 구로지역의 일부가 속해있던 시흥시의 능곡동 주민 어르신들의 구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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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0~1413년 구로 지역을 관할하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지방 행정 구역. 1018년(현종 9) 12현을 왕도(王都)의 외곽 지역인 ‘경기’로 구획하였다. 12현은 개성현(開城縣)·장단현(長湍縣)·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송림(松林)·임진(臨津)·토산(兎山)·임강(臨江)·적성(積城)·파평(坡平)·마전(麻田) 등지로, 이들은 상서도성(尙書都省) 아래에 두었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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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경인공업지대의 영등포지구. 공업 지대는 여러 공장이 넓은 범위에 걸쳐 집중되어 있는 지역으로, 교통·노동력·시장·자원 확보 등의 입지 조건이 유리한 곳에 성립되며, 또한 집적에 의한 접촉의 이익에 의해 형성된다. 1930년대부터 총독부가 농공 병진, 대륙 병참 기지화 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조선의 공업화를 추진한 결과, 193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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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 및 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구로구는 1960년대 경인축을 중심으로 하는 철도·도로망의 발달과 함께 경인로 변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상권이 점진적으로 형성되면서 도시로의 성장이 시작되었다. 특히 정부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따라 1965년부터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가 이곳에 형성되며 수도권 제조업의 중추 지역으로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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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구로 지역에 속해있던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과천현(果川縣)은 동쪽으로 광주(廣州)와 남쪽으로 수원부(水原府), 서쪽으로 금천(衿川)·안산(安山), 북쪽으로 노량(露梁)과 경계를 이루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1413년(태종 13) 대대적인 지명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기존의 지관(知官)과 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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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시흥현으로 낙향한 문인.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순보(純甫), 호는 오헌(傲軒). 할아버지는 백검(白儉)이고, 아버지는 가선대부첨지중추부사를 지낸 백시채(白時采)이다. 아들은 백사민(白師敏)이다. 백상형(白尙瑩)은 서울에서 살다가 시흥현[현 서울특별시 구로구·금천구 및 경기도 시흥 일대]에 정착하였다. 이후 면포정(面圃亭)이란 정자를 지은 뒤 그 앞에 작은 연못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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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구로 지역을 포함했던 지명. 오늘날 시흥시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부천군 소래면과 시흥군 군자면·수암면에 편제되었던 지역을 합쳐 만든 곳으로, 크게 소래권·군자권·수암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소래권은 인천, 군자와 수암권은 안산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고려사(高麗史)』 권94 강감찬전에 “강감찬의 옛 이름은 은천(殷川)인데 금주(衿州) 사람이다. 그의 5대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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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1946년 구로 지역에 설치된 일제강점기의 행정 구역. 1913년 12월 29일에 발표된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합방 직후의 12부 317군을 12부 220개 군으로 폐합하였는데, 이때 시흥·과천·안산의 3개 군이 통폐합되어 시흥군이 되었고 소재지는 영등포에 두었다. 1914년 4월 1일 경성 밖 지역을 개편하였을 때 이 가운데 경기도 시흥군 북면[도림리·구로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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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구로 지역에는 몇 곳의 자연 촌락이 있던 지역에 1970년대 초반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면서 특별한 음식이나 음식점이 형성되지 못하였다. 다만 공단이 들어선 후 가리봉동에 먹자골목이 생성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중국동포들이 그 공간을 점유하여 중국동포타운으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 구로구에는 특별히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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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의 음성이나 문자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 언어란 특정의 계층 또는 지리적 공간의 언어 집단에서 쓰이면서 다른 언어 집단의 언어 체계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 한 언어의 변이체이다. 구로구는 서울 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서울 지역 언어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서울말의 특징은 발음과 억양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발음에 있어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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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명장. 윤관(尹瓘)[1040~1111]은 고려 전기 부평 지역의 지방관인 수주(樹州)의 지주사(知州事)를 지냈다. 이때 관장하던 지역이 현재의 구로구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다. 윤관이 부임하였을 당시는 개경 근교의 큰 고을로 인근의 부평, 인천, 안산, 시흥, 양천, 고양, 교하, 김포 전체가 수주의 속현으로 지주사의 관할에 있었다. 윤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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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린(叔麟), 호는 동산(東山). 증조할아버지는 윤엄(尹儼)이고, 할아버지는 윤민헌(尹民獻)이며, 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윤강(尹絳)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박천구(朴天球)의 딸이며,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형은 좌의정을 지낸 윤지선(尹趾善)이 있다. 윤지완(尹趾完)[1635~1718]은 1662년(현종 3) 형과 함께 증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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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지표상에서 인간의 다양한 활동에 의해 형성되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경관을 포함하며, 세부적으로는 문화 현상, 경제 현상, 사회 현상, 도시 현상, 인구 현상, 교통 현상 등을 포괄한다. 인문지리에서 주요한 내용으로 다루는 요소는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인구 집단의 공간 분석으로서 지표상에 퍼져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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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시기의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역사.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 정치기로 불리는 민족 분열 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 통치기 등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구로구의 중심 동인 구로동은 현재 구로 본동과 구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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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서울특별시 구로구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조선 시대의 전쟁. 오늘날 서울특별시 구로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금천현(衿川縣)과 부평도호부(富平都護府)에 속하였고 수도인 한양 및 바다와도 가까워 전란의 중심권에 속해 있었다. 이 지역은 의병 활동 또한 매우 활발한 지역이었으며 전란의 한 복판에서 피해 또한 막심하였다. 구로 지역은 한양과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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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동 도당제는 마을의 농악, 무속의 굿, 유교식 제의가 결합된 독특한 마을 제의이다. 마을을 맑게 하고, 평안을 기원하며, 복을 도모함으로써 결국 억눌렸던 삶에 활기를 넣어 주는 크나큰 축제이다. 수궁동에서는 50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도당제가 열렸다고 한다. 수궁동 도당제의 유래에 대한 확실한 문헌 자료는 없으나 구전에 따르면 고려 말에 서해로부터 외적의 침입이 빈번할 당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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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중국은행 지점. 중국은행은 1912년 설립되어 중국에 2만여 개의 지점과 해외 21개국 및 지역에 500여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중국은행의 한국 지점은 서울, 안산, 대구 등 세 지역에 있다. 중국은행 구로지점은 2008년 6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개설되었다. 중국은행 구로지점은 한국과 중국의 경제 교류에 이바지하고, 한국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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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복지 단체. 지구촌사랑나눔은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중국 동포들에게 상담 및 지원을 통하여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새 생명 살리기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은혜로운 사회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80년 성남 지역에서 빈민 노동 운동을 전개한 김해성은 1986년 노동상담소 희망의 전화를 설립하면서 한국인 노동자에 대한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