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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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吾川書堂所藏古文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122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병훈 |
작성 시기/일시 | 1926년 1월 16일 - 청도 향교에서 「오천 서당 소장 고문서」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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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 시기/일시 | 1926년 1월 16일 - 청도 향교에서 「오천 서당 소장 고문서」 발송 |
소장처 | 오천 서당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1222 |
발급처 | 청도 향교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48 |
수급처 | 장화식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1222 |
성격 | 망기(望記) |
관련 인물 | 장화식 |
용도 | 요청 |
발급자 | 청도 향교 |
수급자 | 장화식 |
[정의]
[개설]
석전제(釋奠祭)는 석전대제(釋奠大祭)·석채(釋菜)·상정제(上丁祭)·정제(丁祭)라고도 하며, 성균관의 문묘와 향교의 대성전에 위패를 모신 공자를 비롯한 4성 10철 72현을 제사지내는 의식을 일컫는다. 대성전에 모시는 위패의 수는 고을의 크기, 즉 읍격(邑格)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청도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4성[안자(顔子), 자사(子思), 증자(曾子), 맹자(孟子)]과 송조 2현[정자(程子), 주자(朱子)], 동방 18현[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정몽주(鄭夢周), 안유(安裕),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성혼(成渾), 이이(李珥), 김인후(金麟厚), 김장생(金長生), 조헌(趙憲), 김집(金集),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을 배향하고 있다. 오천 서당에는 장화식(蔣華植)에게 석전제의 집례를 맡아주기를 요청하는 망기(望記)가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1926년[병신년] 1월 16일 청도 향교에서 장화식(蔣華植)에게 석전례의 집례를 맡아주길 요청하며 보낸 망기이다. 당시 장화식(蔣華植)은 오천 서당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기에 이곳에 망기가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망기(望記)의 크기는 가로 36㎝, 세로 27.3㎝이다. 흰색 저지(楮紙)에 글을 썼으며, 날짜 부분에 사각형의 붉은 인장(印章)이 찍혀 있다.
[구성/내용]
「오천 서당 소장 고문서」인 망기는 장화식이 56세 되던 해인 1926년에 청도 향교에서 보내 온 것이다. 문서는 그 유형을 알 수 있는 제목과 본문, 연도, 발급자 순으로 적혀 있다. 원문을 보면 “망/석전제 춘향 집례 유학 장화식/병신 정월 십[인장]육 일/교중(望/釋奠祭春享執禮幼學蔣華植/丙申正月十[印章]六日/校中)”이라 되어 있다. 제사는 봄과 가을로 두 차례 즉,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첫 번째 정일]에 거행한다. 본 문서는 음력 2월에 거행되는 석전제에 장화식이 집례로 참석해 주길 바라는 내용이다. 집례는 석전제를 순서에 따라 집행하는 역할로서 제례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이다. 그렇기에 학문이 뛰어나고 명망 있는 자를 선별하였는데, 이러한 집례에 장화식이 천망(薦望)된 것은 당시 청도군 내에서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의의와 평가]
향교는 조선 초기부터 지방 교육과 향풍 진작의 중심 기구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향교의 교육적 기능보다는 제의적 기능만 남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전제는 지방관을 비롯하여 향촌 내 양반 사족들이 대거 참석하는 가장 큰 제의였다. 그렇기에 석전제 제관(祭官)은 고을 내의 수많은 사족들 중에서 명망 있는 인물을 선발하였으며,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의 위상을 널리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망기와 같은 문서는 해당 인물의 지역 내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