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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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Uri Abeoji Seoul Yangban |
영어의미역 | Folk Song 'My Father Seoul Nobility'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곡리 |
집필자 | 이걸재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청소년들이 일상이나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개설]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성인 민요 중에는 신세 타령조의 노래들이 많다. 이 노래는 청소년들이 가족을 모두 거창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돌팔이라 자탄하지만, 노래는 흥겹게 부르는 특징이 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노래로 남녀 노래 2곡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우리 아버지 서울 양반」은 1983년 12월 8일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서 박계홍, 황인덕에 의해 채록되었다. 노래는 유조숙(여, 1908년생, 사망)이 불렀다.
[구성 및 형식]
중고재의 고장으로 유명한 공주에서는 일반 민요나 일노래 또한 평성을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 노래는 힘차게 시작하여 흥겹게 끝나 청소년들의 혈기를 드러내 보인다 할 수 있다. 가락 구성은 4채이면서도 두레패의 이동시 길나래비 가락으로 연주했던 늦을마치 가락과 유사하다.
[내용]
우리 아부지 서울 양반/ 우리 오빠(형) 이내(방안 혹은 안방) 선비/ 우리 엄니(어머니) 연두각시/ 우리 올케(형수) 호랑나비/ 내 동생은 분홍나비/ 나 하나만 돌팔일세.
[현황]
창자(唱者) 유조숙이 사망한 후 현재 재현 가능한 사람이 없다.
[의의와 평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노랫말이 드믄 공주에서는 이채로운 노래이며, 노랫말 중 ‘서울 양반’, ‘분홍나비’, ‘돌팔이’ 등은 전통사회 생활 용어로 많이 사용되던 것이 아닌 점에 비추어 일제강점기 이후 또는 광복 이후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