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공주문화대전 > 공주의 마을 이야기 > 중장리 > 갑사와 절 아랫동네 > 옛 사람의 흔적
-
계룡산은 백제시대부터 나라를 지키는 명산이라는 대우를 받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산의 모양새가 금닭이 알을 품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라 하여 각각의 글자를 따 ‘계룡’이라 한 것인데 백제가 망하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도 역시 국가에서 제사를 올리는 산이었고, 유교주의가 지배한 조선시대에까지도 국가적으로 정성을 들인 곳이었다. 그런 역사속에 갑사가 들어섰고, 갑사...
-
중장1리의 관문인 통미산 입구에는 주유소를 가운데에 둔 삼거리가 있다.(삼거리마을과는 상관없다.) 여기에서 갑사 방향으로 가면 중장1리의 삼거리마을로 들어가고, 좌측의 대전 방향으로 가면 윗장마을과 배살미마을이 있다. 배살미마을은 중장리에서 가장 전통있는 삼척진씨의 터전이다. 삼척진씨는 계룡면 열두대장의 대표적인 세 성씨중의 하나로, 1500년대 후반에 진응린(陳應麟)[...
-
상장마을에는 진씨 가문의 정려인 여흥민씨 열녀문이 있다. 여흥민씨는 어려서부터 효녀로 이름났다. 겨우 열세살 어린나이에 병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부모를 살려냈을 정도였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웠던 그 고운 마음은 열일곱에 삼척진씨 진철규(陣喆奎)[1788~1805]와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편이 몹쓸병에 걸려 죽게되자, 결국 진씨...
-
윗장마을 은 대장골의 가장 위에 있다는 뜻으로 상장이나 구억대징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을의 형성이 산 기슭의 중단부에서 점차 평지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비추어 볼 때, 대장골에서 윗장마을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윗장마을은 오래전부터 양반마을이란 자부심이 대단했다. 중장리의 다섯두레 중 유일하게 풍장을 세우지...
-
갑산소마을은 중장천의 북쪽, 남향한 골짜기 안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에서 꽤 넓은 들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오래전 이 안쪽에 큰 대갓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대갓집으로 들어가는 문을 ‘윤이문’이라 불렀으며, ‘이선달댁’이라고도 했다. 이선달댁은 소유의 땅이 10리 밖에도 있다고 할 만큼 아주 큰 부자였고, 실제로 이선달댁 땅을 밟지 않고는 이 일대를 다닐 수 없다고 할...
-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지주제라는 것은 한국의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일본인들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수탈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우선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수탈을 강행하였고, 온갖 이유를 들어 소작료를 엄청나게 올리면서 끊임없이 농사에 간섭을 했다. 조금씩 불만을 갖고 있던 소작인들은 신분적으로도 일본에게 예속되는 상태가 되자, 소장쟁의라는 이름으로 1920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