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D0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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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성봉현 |
상장마을에는 진씨 가문의 정려인 여흥민씨 열녀문이 있다. 여흥민씨는 어려서부터 효녀로 이름났다. 겨우 열세살 어린나이에 병든 부모님을 위해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부모를 살려냈을 정도였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웠던 그 고운 마음은 열일곱에 삼척진씨 진철규(陣喆奎)[1788~1805]와 결혼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남편이 몹쓸병에 걸려 죽게되자, 결국 진씨 부인도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공주와 충청도 일대의 유림이 나라에 상소를 올려 진씨 부인에 대한 표창을 요구하였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5년간 계속해서 상소를 올렸다. 1805년 10월 70여명의 공주 일대의 유림들은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에서는 당시 공주에서 문장으로 이름났던 화산(華山) 정규한(鄭奎漢)이 소두(疏頭)로 나서 주목된다. 이때의 관련문서 일부가 남아있어 오늘까지 민씨부인의 열행을 상세히 알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이 공주 유림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사람이 노력을 해도 포상이 안되었는데, 80여년이 지난 1881년 다시 50명이 모여 상소를 올린 끝에 결국 열녀 명정을 받게 되었다. 명정이란 국가에서 정려문을 내려주는 것으로, 충신·효자·열녀에게 내려지는 포상 중 가장 최고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명정을 받는 것은 집안 대대로의 영광이니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목에 ‘각’을 짓거나 대문에 현판을 걸어두어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금 진대옥 고택의 대문에는 “열녀학생진철규처유인여흥민씨지문(烈女學生陣喆奎妻孺人驪興閔氏之門)”이라 적힌 정려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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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씨부인 열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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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진씨 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