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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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儀禮服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재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각종 의례 때에 특별히 갖추어 입는 예복.
[개설]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 입는 복식을 말한다. 청도는 유교의 고장으로 관혼상제를 가장 큰 의례로 여겼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복식 또한 중요하게 생각해 각 의례에 맞는 복식을 갖추어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회와 산업 구조의 변화로 관혼상제의 의례가 일부 없어지기도 하고, 그 의미가 사라지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청도군의 의례 중 남자가 성년에 이르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상투를 틀고 갓을 쓰게 하던 관례(冠禮)는 1895년 단발령 공포 이후 사라졌다. 의례의 변화와 함께 관혼상제와 관련된 의례복 역시 크게 변하여 혼례복, 상례복, 제례복 등과 같은 일부 의례복만 남게 되었다.
[혼례복]
혼례복은 혼례 때 신랑, 신부가 입는 예복을 말한다. 혼례라는 일생의 가장 큰 의례에 착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대에 가장 귀한 옷으로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랑은 저고리와 바지에 관복(官服)인 단령(團領)을 입고, 사모를 쓰고, 목화(木靴)를 신고, 사선(紗扇)을 들었다. 신부는 빨간 치마에 초록 저고리, 활옷을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댕기를 했다. 요즘은 혼례가 서양식으로 바뀌면서 신부는 웨딩드레스, 신랑은 양복을 입는데, 대부분 전문 예식장에서 대여한다. 전통 혼례복은 예식을 치른 후 폐백을 올릴 때 착용하는 폐백 옷으로 변하였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서 혼례를 치르던 것이 마을 회관이나 전문 결혼식장, 종교 시설 등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상례복]
유교적 관점에서 상례와 제례는 중요한 의례이고, 청도군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의례로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1969년 ‘가장의례 준칙’에 의해 상례 규모와 상례복이 간소하게 변하였다. 상례 기간도 3년에서 1년, 1년에서 백일이나 49제를 지내고 탈상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상례복은 오복제(五服制)에 따라 착용했는데, 남상주는 제복 위에 상치마[裳]를 입고, 바지에는 행전(行纏)을 한다. 또 행의(行衣)를 입고, 허리에 삼 띠를 매고 외출 시에는 방갓을 쓴다. 상장(喪杖)을 들고, 신은 거친 짚신을 신는다. 여상주는 결혼한 경우에는 삼베나 광목으로 만든 치마, 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고, 수질(首絰)과 요질(腰絰)을 하였다. 머리에는 삼베 수건을 얹고 그 위에 삼이나 짚으로 만든 터드레를 얹고, 짚신을 신었다. 미혼인 상주는 치마, 저고리만 입는다.
요즘은 1969년 가정의례 준칙에 따라 간소화된 상복을 착용하고 있다.
[제례복]
제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은 의례이다. 청도군에서는 제례를 지낼 때의 제복(祭服)에 대해 성균관에 자문을 구하고, 제복을 확보하는 등 의례에 맞는 의례복을 사용하고 지키는데 노력하고 있다.
제례복은 일반적으로 한복으로 하는데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고, 그 위에 도복을 입었다. 허리에는 세조대(細條帶)를 하고, 머리에는 유건(儒巾)을 쓰고, 다리에 행건(行巾)을 차기도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제례복을 제작하기보다는 점차 구입하는 추세이고, 다른 지역의 도포를 구입해 청도군 특유의 도복과 함께 제례복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또한 요즘 대부분 일반 가정에서는 제례 복식을 따로 준비하거나 갖추지 않고 편한 복식을 입는다.
[현황]
관혼상제와 관련된 의례는 시대와 제도의 변화에 따라 바뀌고 있고, 의례복 역시 변화되고 있다. 의례가 거행될 때 착용하는 의례복은 의례가 점차 줄면서 복식이나 절차의 명확함이 사라지고 있다.
청도군에서 사라지는 일부 의례와 의례복에 대해 성균관과 같은 전문 기관에 자문을 구해 정비하고는 있지만, 의례가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의례복 역시 그 의미가 많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